“폭풍전의 고요”는 누가 우려할 일인가
미국의 부시 대통령이 1월 31일(현지시간)의 국정연설에서 “세계국가의 절반 이상이 자유국가이지만 나머지는 그렇지 않다”면서 이란, 시리아, 버마, 짐바브우레 등과 함께 이북을 “비민주국가”로 지목했다. “미국은 전 세계에서 폭정의 종식을 추구할 것”이라면서 늘어놓은 발언이다.
지금까지도 미국이 세계를 자기 모양대로 획일화하기 위한 “세계화”를 공언해왔으며, 부시 대통령이 매해 국정연설 때마다 이북에 대해서 “악의 축”(2002), “억압적인 정권”(2003), “가장 위험한 정권”(2004)이라고 말해온 것으로 봐서 별반 놀랄만한 일도 아닐 것이다.
미국의 국정연설이란 대통령이 상하 양 의원들 앞에서 국가의 상황에 대한 자기 견해와 함께 주요 정치과제에 대해서 언급하는 마당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어느 나라에서나 진행되는 국가수반에 의한 연초 소신표명을 위한 연설인데, 이것이 최근에 와서 미국 국내뿐 아니라 국제적 언론의 관심사가 된 계기는 위에서 본 “악의 축” 발언이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금년의 국정연설, 특히 부시 대통령이 이북에 대해서 “비민주국가” 운운한데 대한 미국 국내 반양을 보면 “그 이상의 구체적인 언급(6자회담, 인권, 위폐 등)이 없었다”면서 격조와 내용의 “저조함”을 지적하는 내용들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그 가운데는 이 “저조함”이 “폭풍전의 고요”(Quiet before the storm)이며 “해결책이 없을 때는 매우 요란스러울 것”이라고 우려하는 견해도 있었다.
과연 그럴까? 또한 설사 “폭풍전의 고요”라는 말이 맞는다 해도 그것은 과연 누가 우려해야 할 일일까?
가령 작년의 국정연설(2005.1.20) 내용을 보자. 이 때는 이북에 대해서 “아시아 국가들과 함께 핵 야망을 포기하도록 설득하고 있다”고 언급하는 것으로 그쳤다. 주변에서는 그 이틀전인 1월 18일 당시 미 국무장관 지명자였던 콘돌리자 라이스가 이북에 대해서 “폭정의 전초기지”라고 말한 사실을 까맣게 잊은듯 6자회담이나 조미관계의 행방을 낙관시했었다. 그러다가 부시의 국정연설에 대해서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던 이북이 2월 10일 외무성 성명을 통해서 핵보유 및 증산과 6자회담 불참이라는 폭탄선언을 하자 세상이 발칵 뒤집어졌다.
좀더 거슬러 올라가서 부시 대통령이 “악의 축” 운운했을 때 미국은 여기에다 “핵 선제공격”위협까지 첨부했었다. 그러다가 10월에 가서 이북으로부터 “핵무기는 물론 그보다 더한 것도 가지게 되어 있다”는 초강경적인 반격을 맞았다. 그래서 현재의 조미 핵 대결이 시작되었다.
이북이 이번에는 언제, 어떤 형태로 부시 연설에 대한 반응을 보일지 지금은 알 수 없다. 그러나 위에서 본 것처럼 이북은 미국이 말싸움 차원에서 강경하게 나갈 때마다 행동 차원에서 초강경자세를 표시했다는 사실을 특히 부시 정권은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부시 대통령은 이번 연설에서 “미국을 보호하고 평화를 정착시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미국이 세계를 지속적으로 선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오만방자한 소리가 터쳐 나오자 이남에서는 즉각 “부시는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신성한 단어를 입에 올릴 자격도 없는 세계적인 ‘폭군’, ‘압제자’이다”, “진정으로 자유와 민주주의가 필요한 나라는 다름 아닌 미국이다”(남북공동선언 실천연대)고 이를 규탄했다.
그리고 그들이 “미국의 위대함은 권력이나 사치품으로 측정되는 것이 아니며 미국인 자체, 그리고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느냐로 측정되는 것이다”(통일연대)라고 말한 것처럼 미국의 전국 68개 도시들에서 국정연설 당일에 반정부 시위가 벌어지거나 ‘연설방해 소동’이 일어났다. 그리고 참가자들은 “부시가 오늘 밤에 진실을 말했는가?”, “부시는 전세계에 삶이 아니라 죽음을 퍼뜨리고 있다. 그는 북조선, 이란, 시리아까지 위협하고 있다”고 하면서 “부시야 물러 나라”, “부시 정권을 몰아내자. 이것은 요구가 아니라 우리의 권리이다”라고 외쳤다 한다.
이번 국정연설이 금년 11월에 있을 중간선거용이라는 견해도 있지만, 지금 미국에서는 이런 상황이 발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라크, 이란, 남미주 정세를 봐도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부시 정권은 문자 그대로 사면초가의 신세가 된 셈인데, 이번에 늘어놓은 대북 적대시발언 때문에 다시 비싼 대가를 지불하게 되면 그들의 ‘레임닥(Lame duck)’현상이 예상보다 더 앞당겨지지 않겠는가. (K)
2006.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