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련과 민단의 역사적인 만남을 두고
“잘 오셨습니다.”, “정말 오랜 시간이었습니다.”
“사실 늦은 감이 있습니다.”, “이런 날을 맞아 너무 기뻐 눈물이 나올 지경입니다.”
5월 17일 오전, 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총련)와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간의 만남이 50년만에 이루어지고 뜨겁게 손을 잡던 총련의 서만술 의장과 민단의 하병옥 단장 사이에서 이런 말들이 오고 갔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동포들은 “마치 남북 정상회담을 다시 보는 것 같았다”고 누구나가 감격글 금치 못해 하였으며, 열띤 취재경쟁을 벌이던 한 외신기자가 “남북간 대립을 상징하는 두 단체가 실질적으로 화해를 하고 양 단체의 수뇌들이 대화를 가진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뉴스러리”라고 말한 정도로 이 순간 내외의 이목은 회담장인 도쿄의 총련중앙회관에 쏠렸다.
조국이 분단되어 남과 북에 상반되는 체제가 생겨 나자 재일동포들도 이 양 체제를 지지하는 단체로 갈라지고 보이지 않는 38선이 그어진지 반세기.
그 바람에 형제, 자매, 친척들이 잔치나 제사 때마다 한 집안에 모여 앉고는 서로 욕질하고, 일본에서 국제 스포츠경기가 진행될 때면 동포들의 응원석이 갈라지고 남북이 서로 남의 나라 팀이나 선수처럼 승부를 겨루는 것을 보면서 한쪽이 이기면 다른 한쪽을 응원하던 동포들이 이를 깔기까지 했던 모습들.
그래도 동포들끼리 단합해야 된다고 한데 모이면 상대방이 자기들을 먹을 내기 할까봐 서로 경계하면서 서먹서먹하게 마주 앉던 일들.
이런 기형적인 장면과 일들은 2000년 6월 평양에서 남북의 수뇌들이 만나서 통일의 이정표인 6.15공동선언이 발표된 이후도 계속되어 왔으니 참으로 암타깝기만 했었다.
그럼 그러던 총련과 민단 사이에서 어떻게 해서 이번과 같은 역사적인 만남과 화해가 이루어졌을가?
이 물음에 답하기 전에 우리는 그것이 어느쪽의 ‘성과물”이냐를 따지려는 관점과 사고를 다 버려야 할 것이다. 이같은 분단식 관점이나 사고는 지금까지도 두 단체간, 나아가서 동포사회내의 반목과 대립을 조장시켜온 근원일뿐 아니라, 이를 잣대로 하다가는 벌써부터 주변에서 들려 오는 “불협화음을 낼 여지는 여전히 크다”니 뭐니 하는 잡소리들에 맞장구를 치는 격기 되어 모처럼 도출되었던 ‘5.17공동성명’ 이행에게 백해무익하기 때문이다.
위의 물음에 대한 정답은 결코 다른데 있지 않다.
‘5.17공동성명’에는 “민단과 총련(총련과 민단)은 회담에서 6.15공동선언이 천명한 ‘우리 민족끼리’의 이념에 따라 민족적 단결과 통일에로 나가는 민족사의 흐름에 맞게 두 단체간에 오래 지속되어 온 반목과 대립을 화해와 화합으로 확고하게 전환시킬 것을 서로 확인하였다.”고 명기되어 있다.
이것이야 말로 이날의 역사적 만남이 어떻게 해서 이루어졌는가 하는 물음에 대한 가장 정확한 대답이다.
다시 말해서 이날의 만남은 6년전에 발표되었던 6.15공동선언에 관통되어 있는 ‘우리 민족끼리’이념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며, 이로써 때늦은 감이 들기는 하나 총련과 민단이 함께 손잡고 6.15시대의 흐름에 합세할 의지를 온 세상에 표시한 셈이다.
따라서 구태여 그 요인이나 배경을 따진다면 이날의 만남은 6.15의 기치 따라 민족의 화해와 단합, 통일이 이루어지기를 념원해온 재일동포들의 주도하에 이루어진 그들의 성과물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물론 반세기동안이나 등을 돌려 왔던 양 단체 사이에서 겨우 이루어진 합의를 이행하는 것이 쉽지 않는 것만은 사실이다. 그럴수록 양자는 더 이상 이념의 차이나 과거에 집착하지 말고 이번에 마련된 ‘우리 민족끼리’라는 공통분모를 소중히 해 나가야 할 것이다.
다행히도 6.15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민족적 운동에 민단이 동참하고 광주에서 열릴 민족통일대축전에도 참가하게 되었다. 광주에 모여드는 남, 북, 해외 동포들은 문자 그대로 하나가 되어 행사장에 들어서는 재일동포 대표단을 어서 오라 반겨 맞아줄 것이다. (K)
(2006.5.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