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녘 동포들의 대북 수해지원을 보면서 생각났던 말
예순 한번째 광복절을 맞았다. 그런데 조선(한)반도와 주변 정세는 예년과 다르다.
아무런 위법성도 없는 북의 미사일 발사훈련이 유엔 안보리의 ‘비난’과 미국, 일본 등의 ‘제재’ 대상이 되는 바람에 남북관계까지 그 영향이 미쳐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조선(한)반도 전체를 휩쓴 태풍으로 북쪽이 엄청난 수해를 입고 평양에서의 8.15민족통일축전이 개최되지 못했다. 그래서 동포들 가운데는 6.15공동선언 실천의 전도를 비관시하는 사람도 없지 않다.
그런데 요즘 조선(한)반도에서는 그같은 비관론을 다 흩날려 버리는 듯한 장면이 벌어지고 있다. “수재민에 남북이 따로 있나” 하는 목소리가 6.15공동선언 실천 남측위원회를 비롯한 여러 민간단체들에 의한 지원운동으로 번져가고, 그것이 남녘의 적십자와 당국, 여야를 불문한 각 정당에까지 확산되었던 것이다.
이북이 국제적으로 고립될 대로 고립된데다가 동족인 이남과도 서먹서먹해진 속에서 엄청난 수해까지 입게 되었으니 도대체 이 나라 운명이 어떻게 되겠는가고 정세 추이를 지켜보던 세계는 아마 감짝 놀랐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광경이 벌어진 것은 결코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2년전에 이북에서 ‘룡천 폭발사고’가 일어났을 때에도 이남에서는 정부, 정당, 적십자, 민간단체들이, 또한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모두가 지원에 나섰다. 그야말로 지금과 똑 같은 광경이 벌어졌었다.
필자도 그때의 감동이 잊혀지지 않는다. 그리고 마침 같은 무렵 도쿄에서 열렸던 강연회에 연사로 출연한 이남의 이름 있는 통일운동 인사가 청중들 앞에서 했던 말이 생생히 떠오른다.
“우리는 하나다, 하나의 민족이다, 하나의 혈육이다, 형제자매들이다, 그것으로 거의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분단된 것은 외세의 흥정거리가 되어 분단되었다, 서로 불신을 한 것은 우리가 냉전시대에 말려들어서 그런 것이다, 이제는 그런 것을 훌훌 털어버리고 우리 민족끼리 단합하자, 이것이 밑바닥에 깔려가지고 바로 그같은 현상들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의 말을 다시 상기하면서 필자는 룡천폭발사고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이남에서 자발적으로 일어났던 지원운동의 밑바닥에는 “하나의 민족”, “혈육”, “형제자매”, “우리 민족끼리 단합하자”고 하는 동족의식과 통일지향의식이 깔려 있다고 확신하게 된다.
미국 부시 행정부는 미사일 발사훈련을 구실로 이북에 대해서 ‘제재’와 압력을 가하고도 모자란듯이 얼마전에는 “도둑정치(또는 부패 독재자)와의 투쟁”을 선언해놓고 다른 나라들에 대해서까지 이에 동조해 나설 것을 사실상 강요했다. 국제적으로 이북의 목을 더 조여 나가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위에서 소개한 통일운동 인사의 얘기는 그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여기에 미국이 놀랄 수밖에 없습니다. 미국의 앞잡이 노릇하는 일본도 또 놀랄 수밖에 없는 것이고”라고 말한 그는 평소의 온순해 보이는 분위기와 달리 이렇게 소리 높이 강조했다.
“이런 상황인데 미국이 북한을 ‘악의 축’이니 ‘테러지원국’이니 뭐니 해서 만약에 무력공격을 했다고 칩시다. 용천사건에서 남쪽 동포들이 저렇게 일어났는데 미국이 폭탄이라도 하나 쓰면 가만히 있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6.15공동선언 4년 동안의 변화입니다.”
이 말 역시 지금의 상황에도 들어맞는 내용이다. 사실 미사일 문제로 남북관계가 일시나마 경색되기는 했으나 일단 이북이 큰 수해를 입게 되자 관과 민,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모두가 지원에 떨쳐나서는 것과 같은, 조선(한)반도의 남북에 갈라져 사는 사람들이 원래는 하나의 민족, 동족이라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는 사람에게는 도저히 이해못할 광경이 현실로 벌어졌다.
뿐만 아니라 비록 평양에서의 민족공동 행사는 개최되지 못했으나 이남에서만 해도 광복절에 즈음해서 독자적인 통일행사들이 특색 있게 벌어졌다. 이 행사장들은 “반미, 반점, 펑화!”, “평택 민군기지 확장 저지!”, “미군기지 반환협상 완전 무효!”, “미국 공화당의 한국지부 한나라당은 미국으로 떠나라”, “미국 공화당의 한국 기관지, 수구보수 세력의 나팔수 보수언론에 맞서 싸우자”라고 외쳐지고 대북 수해지원이 소리 높이 호소된 문자 그대로 반미·반보수·민족대단합의 마당이었다.
미국의 대북 포위·압살 공세는 ‘우리 민족끼리’ 정신 앞에서는 이처럼 무력하다. 계절은 입추가 지났으나 이 민족적 단합과 통일지향의 열기는 식을줄 모른다. (K)
2006.8.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