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 차관보의 평양방문을 두고
6자회담의 미국측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차관보가 6월 21, 22일에 걸쳐 평양을 방문했다.
마카오의 방코델타 아시아(BDA)에 동결되어 있던 북의 자금이 러시아를 통해서 계좌송금될 전망이 서고 이제야 2.13합의가 제대로 이행되는가고 내외의 시선과 기대가 조선(한)반도에 모아진 가운데 갑자기 이뤄진 이번 힐 방북을 놓고 언론들은 “발빠른 행보”, “번개불에 콩 구워 먹는 속전속결”이라고 충격을 감추지 않았으며, 힐 차관보의 방북이 “특사자격”이냐 아니냐, 방북중 북의 최고위급과의 만남이 있는지 없는지 하면서 무슨 대사변이라도 일어난듯이 여론은 관심을 표시했다.
그러나 이같은 시각에 대해서 필자는 이의가 있다.
힐 차관보의 이번 평양방문이 전격적이었던 것만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은 작년 6월 1일에 북의 외무성이 그를 초청했을 때 벌써 이뤄져야 했던 일이며, 이를 미국측의 거부했기 때문에 북의 미사일 발사시험(7월)과 핵시험(10월)을 초래하고 약 1년동안이나 우회한 끝에 이뤄졌다는 사실로 보나, 또한 만약에 미국의 대북 금융제재가 당장 철회되고 2.13합의가 제대로 이행되었더라면 벌써 수개월전에 이뤄졌을지도 모든다는 견지에서 봤을 때, “빠르다”고는 말하기 어렵지 않겠는가.
또 한가지는 이번 방문이 2.13합의 이행의 견지에서 보면 긍정적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무슨 색다른, 또는 충격적인 일이겠는가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흐름을 요약한다면 이미 2005년의 제4차 6자회담 2단계회의에서 조선(한)반도 비핵화라는 목적지를 향하는 레루(9.19공동성명)가 그어졌으며, 올해에 조미 베를린회담(1.16)에 이어 열린 제5차 6자회담 3단계회의에서는 그 레루 위를 달리는 열차의 운행시간표(2.13합의)가 마련되었다. 그런데 막상 열차가 출발하려 하자 북을 적대시하지 않겠다는 미국측의 약속을 증명할 금융제재가 해제되지 않아서 수개월이라는 시간을 낭비하게 되었다.
이렇게 보면 이번 힐 차관보의 평양방문은 결코 색다른 일도 아니고 충격적인 일도 아닌, 스톱 상태에 있던 열차가 시간이 대폭 지체되어 출발했다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이다.
힐 차관보는 이번에 자신은 결코 특사가 아니라 6자회담 수석대표 자격으로 평양을 방문했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그는 스스로가 “대접 잘 받았다”고 말했을 정도로 북측의 환대를 받은 모양이다. 그래서 이것이 2002년 10월에 미국의 제임스 켈리 국무차관보(당시)가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평양을 방문해서 북측에 대해 오만하게 놀았다가 “우리는 핵무기는 물론 그 이상의 것도 가지게 되어 있다”고 오히려 퇴짜 맞던 것과 자꾸 비교되었다.
특히 북측이 동결되었던 자금이 완전히 돌아오기도 전에 힐 차관보를 초청한데 대해서 사람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와 관련해서 『조선신보』(6.21)는 “조선이 미국의 정책적 결단에 주춤거림이 없이 바로 호응할 용의가 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전했다.
힐 차관보는 이번에 북측의 박의춘 외무상과 김계관 외무성 부상을 만났는데 거기서 “우리(미국)와 북조선은 2.13합의를 완전히 이행하겠다는 양자의 의지를 재확인”했다고. 밝혔다. 또한 북측도 “문제 토의는 포괄적이고 생산적이었다”(외무성 대변인 6.23)고 평가했다. 물론 여기에는 “자금 송금 문제가 최종적으로 결속되는 것을 전제로 그 이행에 들어간다데 대해 (양자가)견해를 같이 했다”는 전제가 붙는다.
미국측은 이 대목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그들이 뒤늦게나마 대북송금 자세를 보였기 때문에 이번 힐 차관보의 방북이 이루어지고 2.13합의 이행의 전망이 다시 서게 되었지만 앞으로 그들이 다시 약속을 어겼다가는 다시 달리던 열차가 멈출 수도 있다는 경고라고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때 가서는 “실수했다”(부시 대통령)는 말 한마디로 넘어가기는 도저히 힘들 것이다.
미국이 대화로 나오면 대화로 응하고 강경으로 나오면 초강경으로 맞서서 조미대결에서 총결산을 이루겠다고 하는 북측의 자세는 이처럼 시종일관하다. (K)
2007.6.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