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은 ‘의미 있는 침묵’을 깼는가?
“우리는 남조선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태를 예리하게 지켜보고 있고 앞으로 계산할 때가 있을것”이며 “우리의 침묵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심사숙고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지난 2월 21일, 북의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대변인은 남측의 이명박 새 정부에 이같은 경고를 했다.
일반적으로 북측이 남측의 새 정부에 대해서 처음으로 의사표시한 것은 그보다 며칠후인 3월 6일에,역시 조평통 대변인이 그들을 “남조선 집권보수세력”이라고 호칭하고 “독재정권의 후예”라고 말한 것으로 인식되어 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이같은 경고를 별반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지 그들의 오만하고 어이 없는 대북·통일 자세는 시정되지 않았다.
이명박 대통령은 3월 26일의 통일부 업무보고에서 1991년의 남북 기본합의서가 “기본정신”이라고 하면서 10.4선언을 공공연히 무시해 나섰다. 그런가 하면 같은 날 남측의 김태영 합참의장 내정자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북으로부터의 핵공격”에 어떻게 대처할 것이냐 하는 질문에 “제일 중요한 것은 적(북)이 핵을 가지고 있을 만한 장소를 확인해 타격하는 것”이라고 사실상 선제타격을 주장했다.
한편 이날 미국에서도(현지시간) 라이스 미 국무장관과의 회담후 그와 합동기자회견을 진행한 남측의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이 6자회담과 관련해서 “시간과 인내심이 다해가고 있다”고 미국의 속내를 대변하듯 북을 압박해 나섰다.
북측의 단호하고 거침이 없는 반격은 즉시로, 그것도 상대방이 숨쉴 사이를 주지 않게 연속적으로 가해졌다.
첫 시작으로 북측은 3월 24일에 개성공단 남북경협사무소에 있던 남측당국 인원의 철수를 요구했다. 이는 3월 19일에 남측의 김하중 통일부 장관이 “북핵문제가 타결되기 않으면 개성공단 확대가 어렵다”고 한 발언을 북측이 문제삼은 데 의한 것이었다.
현지의 관계자들에 의하면 처음에는 남측이 “공식문건을 통한 항의” 운운하면서 상대방을 얕보다가 사흘만인 3월 27일 밤 12시를 지나서 말 한마디 못한채 당국 관계자 11명 전원이 철수하게 되었다.
그리고 다음날인 3월 28일에는 북의 외무성 대변인이 “미국이 계속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만들어보려고 우기면서 핵문제의 해결을 지연시킨다면 지금까지 겨우 추진되어 온 핵시설 무력화에도 심각한 영향이 미치게 될 수 있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리고 이날 조선(한)반도 서해상에서는 북측이 단거리미사일 수발을 발사했다.
북측의 강경한 태도표명은 이에 머무르지 않았다.
3월 29일 남북장성급(북남장령급)군사회담 북측 대표단 단장은 남측 수석대표에게 통지문을 보내고 남측이 ‘선제타격’ 발언을 취소하고 사죄하지 않는다면 그를 남북 대화와 접촉의 중단이라는 남측의 의사표시로 받아들일 것이며, 당면 군부 인물들을 포함한 남측 당국자들의 군사분계선 통과를 전면차단하겠다고 통고했다.
일련의 사태는 남측의 수구보수진영이 은근히 바라는 “총선용 북풍”이 아니라 북을 “악의 축”으로 지목해서 핵 선제공격을 가하겠다고 위협했다가 상대방을 핵보유국으로 만든 부시 행정부의 실패한 초기 대북 적대시정책을 답습하려 했던 이명박 정부의 한심한 ‘미국 따라하기’에 따른 자업자득이다.
또한 자기 단에는 미국을 대변한다고 “시간과 인내심” 운운했다가 오히려 핵시설 불능화작업 중단이라는 북측의 압박에 직면했던 모습은 또한 미국이 북실험 앞에서 굴복했다가 정책을 바꾼 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계속 대북 적대시에 매달렸다가 망신한 일본 아베내각과 닮은 골이라고 볼 수 있다.
이번 대응들로 북측이 ‘의미 있는 침묵’을 깬 것인지 어떤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한다. 어쨌든 남측의 이명박 정부가 지금까지의 오만하고 무분별한 언행을 취소하고 사죄할 것은 물론, 그들이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을 이행할데 대한 명백한 의사표시를 하기 전에는 북측이 그들을 용서할 것 같지 않다. (K)
2008.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