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 (조선)반도 통일정세와 (조선)민족의 조국통일운동

이 글은 대동연구소 강민화 소장과 재미 통일학연구소 한호석 소장이 도쿄-뉴욕간 이메일을 통해서 진행한 대담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대담은 강민화 소장이 제기한 질문에 한호석 소장이 답하는 형식으로 진행되었으며 그 내용을 한호석 소장이 정리(제목, 소표제 포함)하였다.

바쁜 속에서 대담에 응해주었으며 대동연구소 설립을 축하해준 한호석 소장에게 심심한 사의를 표한다.

< 차례 >

1. 글을 시작하며

2. 조국통일운동사에서 2005년이 갖는 의미

3. 현충원과 서대문형무소 유적지 방문에 대하여

4. 민족통일행사에 모인 군중의

5. 민족통일전선운동에 요구되는 결정적 요인

6. 2 6.15 시대에 다시 읽는 6.15 공동선언 2

7. 연방제 통일방안은 유일한 통일방안

8.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 방문과 6.15 공동선언 1

9. 조선로동당 창건 60돌을 어떻게 것인가

10. 8.15 민족대축전 기간에 생긴

11. 4년만의 방문에서 얻은 소중한 경험 가지

12. 6.15 공동선언 실천운동의 현황과 과제

 

1. 글을 시작하며

한호석 - 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대동연구소 설립을 축하합니다. 대동연구소라는 이름이 좋습니다. 대동이라는 눈에 익은 말쓰임새는 여러 세력들이 힘을 합친다는 뜻을 가지고 있으니, 말은 민족민주운동권에서 흔히 쓰는 통일전선이라는 개념과 일맥상통합니다. 식대로 풀이하면, 대동연구소란 통일전선연구소라는 뜻으로도 해석할 있겠습니다.

요즈음 (한국)에서는 조국통일문제를 연구하는 연구소들이 생겨나고 있는데 이는 바람직한 일입니다. 조국통일문제에 관한 이론연구활동이 활발하게 펼쳐지는 것은, 10 통일학연구소를 세울 때는 보기 힘들었던 새로운 현상입니다. 10 통일학연구소가 문을 열었을 , 우리 연구소는 외로웠지만, 오늘은 손잡고 함께 가는 길동무들이 여럿이 있어 외롭지 않습니다. 대동연구소도 믿음직한 길동무들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아시다시피, 조국통일이라는 역사적 과업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조국통일운동이 더욱 장성발전되어야 하는데, 운동은 이론구성의 안받침이 없으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합니다. 조국통일운동 이론을 논하는 열기와 수준이 날로 뜨거워지고 높아지면 좋겠습니다. 열기 속에서 대동연구소도 크게 장성하기 바랍니다

 

2. 조국통일운동사에서 2005년이 갖는 의미

강민화 - 축하인사 감사합니다.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6.15 공동선언 발표 5돌과 조국광복 60년을 맞이한 해는 수개월만 남았습니다. 우리는 올해 평양에서의 6.15 공동선언 발표 5 기념 민족통일대축전과 서울에서의 자주, 평화, 통일을 위한 민족대축전을 통해서 한때 경색되었던 남북관계를 회복하는 정도가 아니라, 조국통일의 새로운 국면이 펼쳐지는 현실을 목격했습니다. 그래서 우선 6.15 8.15 축전행사에 소장님이 직접 참가하신 소감에 대해서와 과정에 일어났던 전환국면을 어떻게 보고 계시는지 말씀해 주셨으면 합니다.

- 올해 2005년은 조국통일운동사에 획기적인 해로 기록될 것입니다. 획기적이라는 표현을 쓰는 까닭은, 조국통일운동이 민족통일행사만 하고 흩어지던 낮은 단계에서 벗어나 6.15 공동선언의 깃발을 민족통일전선을 형성하는 높은 단계로 올라섰기 때문입니다. 나는 조국통일운동이 민족통일전선을 형성하는 높은 단계에 올라선 오늘의 현실을 여섯 가지 측면에서 논하려고 합니다.

첫째, 6.15 통일대축전과 8.15 민족대축전은 남북(북남) 정부 대표와 정당 대표, 남북(북남) 해외의 각계각층 사회단체 대표들이 참가함으로써 명실공히 전민족적인 통일의지를 나라 안팎에 과시한 민족통일행사였습니다. 정당 사회단체 대표와 더불어 정부 대표까지 참가한 통일행사가 열린 것은 역사상 처음이었습니다. 6.15 공동선언은 남북(북남) 수뇌가 채택하고 발표한 것이므로, 6.15 공동선언 실천운동에 남북(북남) 정부당국이 추진주체로 나서는 것은 마땅한 일입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남측 정부당국은 6.15 공동선언 실천운동에 나서지 않았고, (한국) 정당들 가운데 민주노동당만 제외하고 다른 정당들도 한결같이 운동을 외면하였으며, 남북(북남) 해외의 각계각층 사회단체들 가운데서도 통일운동단체들만 참가하여 운동범위가 협소하였습니다.

그런데 올해는 사정이 크게 달라졌습니다. 정부 대표단이 나섰고, 정당 대표들이 참가하였으며, 평소에 조국통일운동과 무관하였던 사회단체들과 각계각층 인사들이 동참하였습니다. 이것은 민족통일전선운동을 확대시키는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할 있습니다.

남북(북남) 정부가 6월과 8월의 민족통일행사에 대표단을 각각 파견한 것은 바람직한 일이지만, 남측 정부는 서울에서 8.15 민족대축전과는 별도로 광복 60주년 기념행사를 가졌고, 북측 정부도 평양에서 광복 60주년 경축행사를 가졌습니다. 남북(북남) 정부는 8.15 민족대축전에 자기의 대표단을 참가시키면서도, 다른 한편에서 각각 별도의 행사를 열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같은 내용의 통일행사를 이중적으로 개최하는 것보다 바람직한 것은 남북(북남) 정부와 정당 사회단체들이 하나의 준비위원회를 구성하여 민족통일행사를 공동으로 주최하는 형태일 것입니다.

남북(북남) 정부가 민족통일행사를 공동으로 주최하지 못하는 까닭은, 남측 정부당국이 6.15 공동선언 실천운동에 나서는 적극적인 의지를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동안 남측 정부당국은 통일정책을 내놓지 못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미국이 제국주의전쟁연습에 나오라는 요구와 이라크점령지에 파병하라는 요구를 들이밀 때마다 꼼짝없이 순응복종함으로써 6.15 공동선언의 기본정신에 배치되는 길로 질질 끌려가고 말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