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2007년 조선(한)반도 정세변화를 주목한다

이 글은 대동연구소 강민화 소장이 재미 통일학연구소 한호석 소장과 이메일로 진행한 대담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제목과 원고 정리는 한호석 소장)

 

<차례>

1.탈냉전시대와 사회주의반제투쟁

2.(조선)의 핵무기 보유와 새로운 혁명의 시대

3.조미관계 변화의 속도, 방향, 동인

4.(조선)이 말하는 강성대국의 여명과 선군정치의 의미

5.6.15 공동선언 실현과 조직중심의 사고

6.2007년 대통령선거, 이렇게 전망한다

7.조미관계 정상화와 재일동포의 미래

 

1.탈냉전시대와 사회주의반제투쟁

강민화 : 여기 일본에서는 '올해는 뭔가 변화가 있을 것 같다'는 목소리들이 자주 들려옵니다. 이 대담에서 올해에 어떤 일이 벌어지겠는가 하는 것을 점치는 식으로 말씀을 나눌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지난해에 일어났던 어떤 사변을 계기로 해서, 지금 조선()반도는 물론 세계가 시대의 변화 또는 전진이라는 중대한 시점에 다가서고 있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더 말할 것도 없이 그 사변이란 지난해 10월에 실시된 북의 핵실험입니다. 미국 『뉴욕타임스』지의 칼럼니스트 토머스 L. 프리드먼이라는 사람은 "베를린 장벽의 붕괴는 탈냉전시대의 시작을 알렸고, 북조선의 핵실험은 '포스트 탈냉전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서막일지 모른다"(『통일뉴스』 2006.10.30)고 했는데, 매우 흥미 있는 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탈냉전시대'라고 하면 미국의 일극지배로 상징되는 시대라고 말할 수 있는데, 지난해에 세계적으로는 남미주에서 벌어졌던 반미도미노현상으로 대표되는 반제자주기운의 앙양으로, 미국 국내적으로는 중간선거에서의 공화당(네오콘)의 참패로, 또한 조선()반도에서는 북의 미사일 발사에 이은 핵실험으로 그 같은 미국의 일극지배질서가 좌절되었다고 봅니다. 그래서 나는 올해는 이 같은 시대의 변화 또는 전진에 따르는 '신구갈등의 해', 다시 말해서 새 시대를 주도하는 세력과 구 시대를 대표하는 세력간의 치열한 대결이 예견되는 해로 되지 않겠는가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호석 : 강 소장님은 퓰리처상을 세 차례나 받은 미국의 저명한 중도우파 언론인 토머스 프리드먼(Thomas Loren Friedman)의 말을 인용하면서, (조선)이 실시한 핵실험의 의미를 정세변화의 차원에서 더 나아가 시대전환의 차원으로 이해하신 것으로 생각됩니다. 나는 정세분석에 들어가기에 앞서, 시대인식에 관련한 몇 가지 쟁점을 끄집어내서 논하려고 합니다.

첫째, 시대를 구분하는 냉전(cold war)이라는 개념을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열전(hot war)과 대비되는 냉전이라는 개념은 전쟁체제의 변화 또는 전쟁방식의 변화에 의거하여 시대를 구분하는 정치개념입니다.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던 1914 7월부터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 8월에 이르는 30여 년은 그야말로 열전의 시대였습니다. 그 시기에 일어난 열전이란 제국주의국가권력들과 제국주의독점자본들 사이에서 날카롭게 형성된 모순이 식민지쟁탈전으로 폭발한 것입니다.

나치독일이 폴란드를 무력침공으로 들이친 1939 9 1일부터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미국의 핵폭탄공격을 받은 일제가 항복을 선언한 1945 8 15일까지 여섯 해 동안 인류를 전쟁참화로 몰아넣었던 제2차 세계대전이 포성을 멈추었을 때, 그 종전은 제국주의국가들이 서로 충돌한 식민지쟁탈전을 마감하고 새로운 국제질서 곧 냉전체제를 펼쳐놓았습니다.

1945 2 4일부터 11일까지 스탈린(Joseph Stalin, 1879-1953), 루스벨트(Franklin D. Roosevelt, 1882-1945), 처칠(Winston Churchill, 1871-1947)이 얄타회담(Yalta Conference)에서 전후처리협정을 채택하였고, 그에 따라 형성된 것이 냉전체제입니다. 그러므로 냉전체제는 곧 얄타협정체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얄타협정이 말해주는 것처럼, 제국주의 미국은 서유럽과 일본을 통제하면서 그 밖의 개별적 자본주의나라들을 지배, 수탈하는 거대한 제국주의세계체제를 세우기 시작하였고, 그 반대쪽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승전국인 소련이 주도하여 사회주의세계체제를 세우려고 하였습니다. 소련의 주도로 사회주의세계체제를 세우려는 운동이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은, 2차 세계대전 직후 동유럽과 아시아에서 일어난 여러 형태의 민주주의혁명(democratic revolution)이 사회적, 역사적 조건에 따라 다양한 형식을 취하면서도 사회주의적 지향을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얄타협정에 의해서 성립된 냉전체제란, 제국주의세계체제 성립운동과 사회주의세계체제 성립운동의 대립구도에 따라 제국주의반동무력 대 사회주의혁명무력이 대치한 체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회주의세계체제 성립운동은 1950년대 말부터 1960년대 말까지 10년 동안 이어진 중소분쟁과 중국이 소련의 반대를 무릅쓰고 1964 10 16일에 실시한 핵실험으로 완성을 보지 못한 채 결국 멈추고 말았는데, 그에 비해 미국은 서유럽과 일본을 통제하면서 제국주의세계체제를 완성단계로 계속 밀고 나갔습니다.

얄타협정은 사회주의와 제국주의가 정치적으로 타협한 결과물이었으므로, 그 협정에 의해서 성립된 냉전체제에서 사회주의반제투쟁은 사회주의와 제국주의의 평화공존으로 대체되었습니다. 냉전체제는 무력대치라는 현상을 드러냈지만 그 본질은 어디까지나 상호공존에 있었습니다.

사회주의반제투쟁을 포기하고 사회주의와 제국주의의 평화공존으로 돌아서려는 움직임에 쐐기를 박은 것은 1950년에 일어난 한국(조선)전쟁이었습니다. (조선)반도에서 열전이 폭발하자, 사회주의와 제국주의의 평화공존을 꿈꾸었던 우매한 환상이 깨져버린 것입니다. 유럽에서 나토군과 바르샤바조약군이 대치하면서 상호공존을 유지하고 있었던 1950년대에서 1980년대까지 40년에 이르는 기간에 동아시아, 중동, 라틴아메리카에서는 한국(조선)전쟁, 베트남전쟁, 중동전쟁, 중남미 저강도전쟁으로 이어진 열전이 줄이어 터져 나왔습니다. 소련과 중국이 반제노선을 포기하고 제국주의세계체제와 타협, 공존의 길로 들어서고 있었던 시기에, 완성단계로 치닫는 제국주의세계체제의 확장운동을 멈춰 세우면서 그 반동체제를 무너뜨리려는 치열한 반제전선은 나토군과 바르샤바조약군이 대치한 유럽이 아니라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에서 형성되었던 것입니다.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의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반제의 기치를 들고 제국주의세계체제와 정면으로 대결하고 있었던 반면, 소련과 동유럽에서는 반제노선의 포기, 그리고 제국주의세계체제와의 타협이 진척되고 있었고, 그 진척은 불가피하게 소비에트사회주의(soviet socialism)의 붕괴로 귀결되었습니다. 1961 8월에 세워져 28년 동안 존재하였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것은, 얄타협정체제의 붕괴, 그리고 소비에트사회주의의 붕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이었습니다. 1945 2월 스탈린, 루스벨트, 처칠이 얄타회담에서 정치적으로 타협하여 세워놓은 냉전체제는, 1989 12 2일부터 3일까지 열린 몰타회담에서 미국 대통령 부시(George H. W. Bush)와 소련공산당 서기장 고르바쵸프(Mihail Gorvachov)가 정치적으로 타협함으로써 종말을 고했습니다. 냉전체제의 종말은 세계평화의 실현이 아니라 반제노선을 포기한 소비에트사회주의의 붕괴, 그리고 걸프전, 아프가니스탄전, 코소보전, 이라크전으로 이어진 제국주의침략전쟁의 확대였습니다.

둘째, 몰타회담 이후 탈냉전시대는, 반제의 기치를 내려놓고 제국주의세계체제와 손을 잡은 시장사회주의(market socialism)의 출현, 그리고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에서 전개되는 민주주의혁명의 혼란과 침체를 그 시대적 특징으로 드러냈습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시장사회주의가 출현하고, 3세계 민주주의혁명이 시련기에 접어들자 그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제국주의선동가들은 사회주의가 마침내 종말을 고하고 자본주의의 최후승리가 실현된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고 떠들어대었습니다. 미국의 반동적 이론가 프랜시스 후쿠야마(Francis Fukuyama)는 무너지는 베를린 장벽을 바라보면서 1989년에 쓴 자신의 글 '역사는 끝났는가?(The End of History?)'에서 이른바 '역사의 종말'을 논하였습니다. 그는 20세기말의 시대상황을 단순히 냉전체제의 종말이라고 해석한 것이 아니라, 인류의 사상적 진화(ideological evolution)가 종착점에 이르러 자유민주주의(liberal democracy)가 마침내 인류의 최종적 정치방식으로 보편화되었다고 강변하였습니다.

그러나 후쿠야마의 강변은 거짓말로 짜깁기한 조잡한 선동이었습니다. 소비에트사회주의가 무너진 탈냉전시대는 제국주의세계체제가 일방적으로, 최종적으로 승리한 '역사의 종말'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반제의 기치를 내려놓고 제국주의와 손을 잡은 러시아, 중국, 베트남의 시장사회주의가 제국주의세계체제의 사상문화와 시장경제의 침투력에 의해서 잠식되고 있을 때, 그리하여 워싱턴의 제국주의반동세력이 제국주의세계체제의 완전승리가 멀지 않았다고 소리치며 핵무기와 달러의 위력을 과시하고 있을 때, 그리하여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의 진보적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에게 시나브로 실의와 무기력이 스며들고 있을 때, 바로 그러한 탈냉전시기에 변질과 분열, 침체와 쇠퇴에 빠진 사회주의의 앞길에 재생과 부흥의 미래를 열어놓은 것은, 제국주의세계체제의 지배, 약탈, 침략에 맞서 싸운 사회주의반제투쟁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제국주의세계체제에 맞서 싸우는 사회주의반제투쟁만이 변질과 분열, 침체와 쇠퇴에 빠진 사회주의의 앞길에 재생과 부흥의 미래를 열어줄 수 있습니다.

여기서 주목하는 것은, 오늘 사회주의반제투쟁을 가장 치열하게 벌이는 나라가 북(조선)이라는 사실입니다. 반제의 기치를 슬그머니 내리고 제국주의세계체제와 손잡은 러시아와 동유럽, 중국과 베트남이 '달콤한 밀월여행'의 환상에 빠져들고 있을 때, (조선)은 제국주의세계체제에 정면으로 도전하며 반제투쟁을 벌였습니다. 제국주의세계체제에 맞서 비타협적으로 투쟁하는 그들은 제국주의경제제재와 제국주의전쟁위협, 그리고 미증유의 식량난이라는 견디기 힘든 고통을 넘어서야 하였습니다. 그들은 멀건 죽을 끓여먹으면서 '고난의 행군'을 이겨내야 하였고, 제국주의봉쇄를 뚫고 사회주의자력갱생의 길을 개척하여야 하였습니다.

탈냉전시기에 북(조선)과 미국 사이에서 '핵문제'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정치적, 사상적 대결은, 제국주의세계체제에 맞서 비타협적으로 투쟁하며 자력갱생의 길을 헤쳐 나가는 사회주의혁명세력과 제국주의세계체제의 최후승리가 멀지 않았다고 떠들며 사회주의의 완전말살을 노리는 제국주의반동세력 사이에서 벌어지는 격렬한 투쟁입니다.

만일 북(조선)이 제국주의경제제재와 제국주의전쟁위협에 굴복하여 반제의 기치를 내려놓고 제국주의세계체제와 손을 잡는다면, 워싱턴의 제국주의반동세력이 북(조선)을 향해 정조준하고 있는 반사회주의적대정책의 최종목표인 이른바 '정권교체(regime change)'가 실현되는 것이며, 저들이 바라는 대로 만일 북(조선)에서 '정권교체'가 실현된다면 사회주의의 최후보루마저 무너지고 제국주의세계체제가 완성되는 것입니다.

사회주의의 재생과 부흥을 갈망하는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의 진보적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은 지축을 흔드는 굉음을 일으킨 사회주의반제투쟁의 폭발력을 보았으니, 그 대사변이 2006 10 9일에 북(조선)이 실시한 핵실험입니다. 나는 북(조선)의 핵실험을 사회주의반제투쟁의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핵무기는 인류를 재앙에 빠뜨리는 대량살상무기이므로 북(조선)의 핵실험도 당연히 반대해야 한다고 외치는 반핵교조주의와 부르주아평화주의는, 오늘 사회주의의 재생과 부흥을 갈망하는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의 진보적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에게 반제투쟁이 얼마나 절박하고 절실한 것인지를 모르는 무지와 편견의 소산입니다.

(조선)의 핵실험은 사회주의의 말살을 노리는 제국주의반동세력의 반사회주의적대정책에 파탄의 쐐기를 박고, 사회주의의 앞길에 재생과 부흥의 미래를 열어준 반제국주의핵실험공세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반핵과 평화의 화살은 사회주의평화강령의 기치를 들고 제국주의핵참화를 예방하기 위해서 투쟁하는 북(조선)의 반제국주의핵실험공세에 겨누어져서는 아니 되며, 제국주의세계체제의 완성을 폭력적으로 다그치는 제국주의반동세력에게, 오로지 그들의 광란적인 핵전쟁계획에 집중되어야 할 것입니다.

내가 이전에 발표한 글에서 논한 대로, 명백하게도 북(조선)의 핵실험대공세 앞에서 반사회주의적대정책은 힘을 잃어버리고 표류하고 있습니다. 지금 워싱턴의 제국주의반동세력이 북(조선)의 목을 조르는 금융제재에 '융통성'을 보이고, 악착스럽게 거부해왔던 조미직접협상에 나서고, 그에 따라 6자회담이 예상을 뛰어넘어 급진전되는 정세변화는 제국주의반동세력의 반사회주의적대정책이 힘을 잃어버리고 표류하기 시작하였음을 현실로 입증합니다. (조선)의 핵실험 이후에 재개된 6자회담의 향방에 관해서는 아래에서 다시 논하겠습니다.

 

2.(조선)의 핵무기 보유와 새로운 혁명의 시대

: (조선)의 핵실험 이후 미국의 반사회주의적대정책이 힘을 잃어버리고 표류하기 시작하였다고 하셨는데, 왜 그렇게 되었는지 그 원인과 배경에 대해 설명이 요구됩니다.

: 두 가지 시각에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첫째, 제국주의반동세력의 시각에서 북(조선)의 핵무기 보유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제국주의반동세력이 무너뜨리려는 사회주의체제가 핵무기를 보유하는 경우, 제국주의반동세력은 사회주의체제를 무너뜨리려는 반사회주의적대정책을 마구 밀고 나가지 못하게 됩니다. 제국주의반동세력의 발목을 잡는 것은, 핵무기를 보유한 사회주의체제가 무너지면서 통제력이 마비되는 경우, 핵물질이 국제암시장으로 흘러가거나 핵기술이 다른 나라로 넘어가거나 핵탄두의 행방을 알 수 없게 되는 대혼란이 일어날 것이라는 심각한 우려입니다. 그러한 대혼란은 핵확산금지체제의 붕괴를 뜻하므로, 제국주의반동세력은 핵무기를 보유한 사회주의체제를 무너뜨리는 급격한 체제붕괴책동을 자제하는 대신, 완만한 체제변질책동에 매달리게 됩니다.

여기서 말하는 완만한 체제변질책동이란 사회주의적대국과 정치협상을 벌이고 관계를 정상화하는 과정에서 상대를 '개혁' '개방'으로 유도함으로써 사회주의반제투쟁과 사회주의자력갱생을 포기하게 만들고 시장사회주의로 변질시켜 제국주의세계체제 안으로 편입시키는 것을 뜻합니다.

워싱턴의 제국주의반동세력이 추구해오던 반사회주의적대정책이 힘을 잃어버리고 표류하기 시작한 현상은, 급격한 체제붕괴책동을 완만한 체제변질책동으로 바꾸는 정책전환기에 일어나는 일종의 과도현상입니다.

장차 정책전환이 마감되고 완만한 체제변질책동이 고착될 때, 제국주의반동세력은 조미관계 정상화에 편승하여 북(조선)의 사회주의체제를 시장사회주의로 변질시키는 책동에 힘을 집중하게 될 것입니다.

둘째, (조선)의 시각에서 핵무기 보유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핵탄두는 사람이 두 손으로 움켜쥘 수 있는 작은 금속덩어리이지만, 그것은 어느 한 공장에서 만들어낼 수 있는 간단한 물품이 아닙니다. 그것은 북(조선)의 노동계급이 사회주의자력갱생의 기치를 들고 중화학공업 부문과 핵공학 부문에서 수 십 년 동안 발전시켜온 사회주의공업화가 안겨준 거창한 과학적 성과물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볼 때, (조선)의 핵실험은 사회주의자력갱생의 승리이며, 사회주의국방공업의 승리이며, 사회주의노동계급의 승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승리는 워싱턴의 제국주의반동세력이 사회주의자력갱생을 파탄시키고 사회주의공업화를 지체시키고 사회주의노동계급을 무력화하려는 반사회주의적대정책을 밀고 나갔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음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조선)이 핵실험을 성공적으로 실시한 것은, 제국주의반동세력이 사회주의자력갱생을 파탄시키지 못하고 사회주의공업화를 지체시키지 못하고 사회주의노동계급을 무력화시키지 못했다는 뜻에서 반사회주의적대정책의 실패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 지난 시기 소련은 오늘의 북(조선)보다 훨씬 강력한 핵억지력을 보유하고 있었는데도 어처구니없는 체제붕괴의 비극을 경험하지 않았습니까? 소련의 경우, 사회주의체제가 무너지는 것은 핵억지력으로도 막지 못했음을 지적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소련의 핵억지력과 북(조선)의 핵억지력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점이 논증되어야 북(조선)의 핵실험 이후 미국의 반사회주의적대정책이 힘을 잃어버리고 표류하기 시작하였다고 보신 한 소장님의 견해가 설득력을 가질 것으로 생각됩니다.

: (조선)의 핵실험은 사회주의 대 제국주의의 평화공존이 진행되던 냉전시기에 소련이 실시한 핵실험과 근본적으로 다르고, 사회주의진영이 중소분쟁으로 치닫던 냉전시기에 중국이 실시한 핵실험과도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소련의 핵실험은 사회주의반제노선을 포기한 핵군비경쟁의 산물이었습니다. 핵군비경쟁으로 체제붕괴를 막는다는 말은 어불성설입니다. 소모적인 핵군비경쟁은 소비에트사회주의를 무너뜨린 붕괴요인들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소비에트사회주의는 제국주의반동세력이 가한 경제제재와 전쟁위협으로 무너진 것이 아니라, 생산수단의 민영화(privatization)와 경제관계의 시장화(marketization)가 사회주의계획경제를 위축, 마비시켰기 때문에 무너졌습니다. 이른바 '2경제(the second economy)'라고 부른 자본주의시장경제의 점차적 확산, 시장경제에 의존하는 새로운 계층의 출현, 당간부와 정부관료의 부정부패가 붕괴의 직접적 원인이었습니다.

위에서 말씀하신 대로, 소련의 핵억지력은 소비에트사회주의의 붕괴를 막지 못하였습니다. 소련의 붉은 군대는 자기가 지켜야 할 체제가 무너지는 것을 뻔히 보면서도, 소총 한 방 쏘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명백하게도, 소련군의 무기력은 군사적 무기력이 아니라 사회주의사상교양의 부족, 곧 사상적 무기력이었습니다.

1953년부터 19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