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동포 새 세대와 조국통일
강민화(대동연구소 소장)
이 글은 2005년 11월 18일 도쿄에서 열린 ‘조국통일을 생각하는 재일동포 젊은 세대 간친회’에서 필자가 조국평화통일협회(평통협) 홍보국장으로서 출연한 강연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평양방문중에 일어난 해프닝을 놓고 생각났던 일
저는 지난달 평양에 얼마간 체류했습니다. 조선로동당 창건 60주년을 맞이해서 그야말로 경축분위기 일색이었습니다. 특히 금년에 이북에서는 농사가 매우 잘 되었는데, 알곡 600만톤의 연간목표를 달성한 기쁨과 긍지감이 이 경축무드를 한층 돋구어주었습니다. 노동자, 농민, 군인들은 물론 당과 정부 등 각 부문의 간부들도 무조건 다 농촌지원(가을걷이)에 동원되었습니다.
그리고 금년에 광복 60주년을 맞기도 했는데 이 8.15광복절부터 개막되었던 리메이크판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이 연일 대성황리에 진행되고 있었으며 마침 제가 체류했던 기간중에 수많은 남녘동포들이 이를 관람하러 연이어 평양을 방문했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한가지 중대사건이라고 할까, 해프닝이 일어났습니다. 이남의 통일운동단체에 ‘6.15공동선언 실현과 한반도평화를 위한 통일연대’라고 하는 조직이 있는데 여기서 대변인을 하는 황선이라는 여성이 ‘아리랑’을 보던중에 진통이 와서 평양산원에 실려갔다가 딸을 낳았던 것입니다. 그녀는 1998년에도 한총련 대표로서 평양에 갔는데 그때는 당국의 승인 없이 방북했다고 해서 돌아갈 때 판문점의 경계선을 넘자 마자 ‘국가보안법’위반으로 구속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당당하게 평양을 방문하고 그곳에서 태어난 둘째딸을 안고 판문점 경유로 돌아갔습니다.
이 일이 TV나 신문에서 전해지자 현지에서 큰 파문을 일으켰습니다. 제가 돌아와서 이야기를 들어 보니 남녘에서도 그러했다고 합니다. 정말 세상이 이렇게도 변했습니다. 6.15공동선언 이전에는 상상도 못한 일이 아닙니까.
황선씨가 남녘에 돌아간 것이 10월 25일인데, 판문점 경계선을 넘은 그녀는 언론의 인터뷰에서 새로 태어난 둘째딸의 국적문제에 대한 질문에 “북의 국적법이 미국처럼 영토 안에서 출생한 사람은 자국의 국민이 된다고 되어있지 않는걸로 알고 있다”면서 “이 아이는 의심할 여지없이 고향은 평양이지만 남쪽이 국적이 되겠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그녀는 “머지 않은 시기에 아무것도 붙지 않은 코리아 국적이 됐으면 좋겠다”고도 했습니다.
저는 이 내용을 읽으면서 평소에 품고 있던 재일동포들의 국적문제에 대한 생각이 새삼스럽게 떠올랐습니다.
아시다싶이 재일동포사회에는 같은 동포들임에도 불구하고 ‘조선’국적과 ‘한국’국적이 존재합니다. 나라가 갈라졌기 때문이지요. 그 바람에 어느 국적을 택하느냐에 따라서 38선도 없는 동포사회가 친북, 친남으로 갈라지는데, 요즘에는 거기에다 어느 한쪽 국적은 ‘다수파’이고 다른 한쪽은 ‘소수파’라는 말까지 들려옵니다.
이런 문제는 조국이 통일되어야 없어지게 되는데, 저는 개인적으로 이렇게 국적을 놓고 동포사회가 갈라지는 기형적인 상황이 언제까지나 계속되어서야 되겠는가, 비록 통일되기 이전이라도 해결할 방법이 없겠는가고 안타까이 했던 끝에 나라가 갈라진 상황에서 우리의 외국인등록 원본에는 ‘조선’, ‘한국’의 두 국적이 존재한다 해도 동포들이 평소에 가지고 다니는 외국인등록증의 국적란에는 단 한가지 ‘코리아’라고 기입하는 것이 어떤가, 그리고 이 문제를 지금 진행되고 있는 남북의 당국간회담에서 토의하거나 조국의 남북 그리고 총련과 민단의 다표들, 일본정부 대표들이 5자회담을 갖는 것이 어떤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오늘 여기서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은 조국의 분단이, 또한 이 분단을 극복하는 조국통일문제가 결코 재일동포들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전환기를 맞은 재일동포들의 통일운동
재일동포들도 우리 민족의 일원이며 조국통일에 절실한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여러분들의 아버지, 어머니,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조국의 남북 동포들과 함께 통일을 위해서 그야말로 모든 것을 다 바쳐왔습니다.
얼마전에 조국평화통일협회의 회의가 도쿄에서 열렸는데, 여기서 원로급의 선배들이 하신 발언 내용들이 참으로 인상깊었습니다.
어떤 분은 우리가 지난날 좀 고생을 했다고 하지만, 기껏해야 밥을 몇기 굶었다거나 아이들을 학교에 못보냈다는 정도이다. 그러나 이남에서 통일운동을 하노라면 감옥살이를 각오해야 하며 어떨 때는 목숨까지 바쳐야 했다, 그것이 어찌 이남동포에 한한 얘기겠는가, 재일동포들 가운데도 아무도 모르게 조국통일을 위해서 활동하다가 숨져간 사람들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또 어떤 분은 이름난 미술가인데, 얼마전에 서울과 제주도에서 자기 작품의 개인전이 열려서 갔다왔다고 합니다. 이것만 해도 이전에는 생각도 못한 일인데, 이남에 체류하던중에 이전이면 이북에 관한 얘기를 할 때면 주변을 살펴본 다음에 목소리를 낮춰야 했지만, 지난 8.15축전에 참가했던 북측의 당국대표단이 현충원을 방문한 일로 이남사회가 발깍 뒤집혔을 때에는 사람들이 공공연히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용단을 찬양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랫동안 통일운동에 헌신해 오신 어떤 동포 할머니는 이제는 평통협의 활동은 물론 재일동포들의 통일운동에서도 젊은 새 세대들이 앞장서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이 분들의 말씀을 종합해보면 하나는 재일동포들의 통일운동의 전통에 관한 얘기이고, 또 하나는 6.15공동선언에 의해서 시대가 완전히 바뀌었다는 얘기이고, 또한 오늘 우리의 통일운동 앞에 나선 과제이자 선배들의 기대에 관한 얘기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재일동포 새 세대가 통일운동의 주인으로 나서야 할 지금은 1세 선배들이 활동하던 때와 상황이 전혀 다릅니다. 말하자면 통일운동에서의 전환기를 맞고 있습니다.
어떤 전환기일까요? 하나는 세대교체입니다. 1994년, 그러니까 약 10년전에는 재일동포사회에서 1세가 차지하는 비율은 9.85%였습니다. 2세는 41.18%이고 3세는 40%, 4세는 8.36%였습니다. 그런데 현재는 1세가 5∼6%로 절반이 되었으며 2세는 40%, 3세는 40%, 4세는 14%로 약 2배가 되었으며 이제는 5세가 태어났다는 말까지 들려옵니다.
통일운동에서의 세대교체, 자칫하면 우리가 무심히 하는 말이지만 사실은 이 자체가 비정상적인 일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우리의 선배들이 “분단된 조국을 후대들에게 넘겨줄 수 없다”고 늘 말씀해오시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현실은 60년이라는 분단세월이 흐르고 우리의 통일운동에서 대를 잇는 문제가 제기되게 되었습니다.
통일운동의 전환기라고 말하는 두번째 내용은 조국통일을 둘러싼 시대의 변화입니다. 남, 북, 해외 온 겨레는 6.15공동선언이 발표된 이후의 지금을 ‘6.15시대’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정치, 경제, 문화, 군사 등 여러 분야에서 남북간의 대화와 교류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만큼 활발해지고 사람과 물자가 하늘과 땅, 바다를 거쳐서 남북을 자주 오가고 있는데, 이 과정에 사람들의 마음과 마음이 동족의식, 민족적 유대로 굳게 이어지고 남북간의 격폐상태가 크게 허물어져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통일은 “언제 되느냐”가 아니라 이미 시작되었다, 현재진행형이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속에서 재일동포들의 의식면에서도 북이니 남이니 하는 시각이 점점 허물어져가고 있으며, 이것이 IT기술의 발전과 소위 ‘한류붐’과 같은 것들로 보다 돋구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처럼 새로운 시대, 새로운 상황에 맞는 새로운 통일운동상을 모색해야 할 단계에 와있습니다.
재일동포 새 세대들의 통일의식
그런데 앞으로 우리가 새 세대들을 주인으로 내세우고 통일운동을 하자고 하지만, 그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지난날 1세들은 조국통일이라고 하면 무조건적이었으며, 그야말로 모든 것을 다 바치고 헌신했습니다. 그것은 “다시는 식민지 노예가 되기 싫다”고 하는 마음과 애향심, 이런 것들이 조국애, 민족애와 직결되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 1세들로부터 직접 영향을 받고 자랐던 1세에 가까운 2세들도 비록 1세 수준에는 못미친다 해도 나름대로 조국통일에 헌신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