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연록】정세는 어느 방향에로 흐르고 있으며 우리는 어느 위치에 있는가
강민화(대동연구소 소장)
이 글은 2006년 1월 28일과 29일의 두번에 걸쳐 일본 아이치현에서 열린 재일동포들의 신년모임에서 필자가 진행한 강연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작년 2005년은 조국통일의 견지에서 보면 하나의 전기를 맞은 해였습니다.
그런데, 여기 일본에서는 그 사실이 거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작년 한해동안에 일어난 일들 가운데 재일동포들의 시야에 있는 것이라고 하면 일본 당국이나 매스콤이 집요하게 벌였던 ‘북조선 때리기’나 ‘재일조선인 왕따’, 또는 경제적 곤난, 대부분이 이런 것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로 인해서 새해 2006년을 우려와 불안속에서 맞이한 동포들도 적지 않으리라고 봅니다.
어째서 이렇게 될까요? 이에 대해서 정확히 알지 못하면 통일을 둘러 싼 정세가 누구의 주도하에, 어느 방향에로 흐르고 있는가를 알 수 없고, 또 올해 정세에 대해서도 옳게 전망할 수 없습니다.
흔히들, 복잡하고 앞이 잘 내다보이지 않을 때에는 초심에 돌아가라고 합니다. 그러한 의미로, 자기가 어디로 향하고 있으며 지금은 어디에 서 있는가, 이것을 잘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 차례 >
1.지난해 통일정세의 흐름
2.재일동포들속에서 나타나고 있는 정세관과 통일관
3.2006년의 정세 전망을 어떻게 내다볼 것인가
1.지난해 통일정세의 흐름
(1)조선(한)반도에서 또다시 일어난 질적 변화
2000년 6월 15일에 평양에서 남북 수뇌 상봉과 회담이 진행되고 역사적인 6.15공동선언이 발표된지 벌써 6년째가 됩니다. 그후 조선(한)반도는 ‘6.15시대’에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작년은 이 공동선언이 발표되어 5주년을 맞은 해였는데, 이 한해동안에 조선(한)반도 정세는 또다시 질적으로 변했습니다.
계기는 6.17특사 접견
이같은 질적 변화가 일어난 계기는 작년 6월 17일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남측의 정동영 통일부 장관(당시)을 대통령 특사로서 접견한 것이었습니다.
아시다싶이, 그때까지만 해도 남북관계는, 그 전해에 김일성 주석의 10주기에 즈음한 남측 조문단의 평양방문을 남측 당국이 불허한 일과, 수백명의 ‘탈북자’들을 서울에 받아들인 일, 또한 남·북·해외 민족공동행사에로의 범민련과 한총련 대표들의 참가를 불허한 일 등으로 6.15공동선언 발표후 최악이라고 할 만큼 경색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6.17접견에 의해서 남북관계는 단순히 복원되었다는 정도가 아니라 더 한단계, 그것도 질적으로 발전했습니다. 그리고 조선(한)반도 핵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 남북이 힘을 합쳐 나갈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관민이 함께 했던 자주통일 지향
그럼 작년에 어떤 질적 변화가 일어났는지, 다시 돌이켜 보겠습니다.
우선, 관민이 자주통일을 함께 지향하는 계기가 열렸습니다.
작년은 평양에서 6.15공동선언 발표 5주년에 즈음한 민족공동행사가 열리고, 서울에서는 8.15광복 60주년에 즈음한 민족공동행사가 열렸습니다. 이같은 행사는 이전에도 평양이나 서울, 금강산에서 진행되어 왔습니다만, 작년에는 처음으로 여기에 남북의 당국대표단이 참가했습니다.
서울에서 열렸던 8.15행사 때만 해도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한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우선 북측 당국대표단이 서울의 현충원을 방문하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남측 당국이 ‘우리 민족끼리’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을 그렇게도 꺼려 왔음에도 불구하고 정동영 장관이 개막연설에서 “우리 민족끼리 자주통일의 길을 열어 나가자”고 호소해서 사람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이 일들은 모두 남북 당국이 체면에 구애됨이 없이 서로의 사상과 체제를 존중하면서 공존공영해 나가자는 결단을 내렸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며, 이것이야 말로 6.15공동선언의 정당성을 내외에 새삼스럽게 과시한 사변들이었습니다.
남북 대화와 교류·협력의 전례없는 활성화
한편 6.15공동선언 발표 이후에 활발해졌던 남북간의 대화와 교류·협력도 보다 활성화되었으며, 이를 통해서 민족적 화해와 단합 기운도 보다 높아졌습니다.
남측의 통일부가 작년 12월 29일에 발표한 2005년 한해동안의 통계에 의하면, 남북간을 오간 사람들의 수는 금강산관광을 제외해도 8만 9,000명이며, 전년보다 3배나 증가했습니다. 그리고 남북을 연결하는 동해선 도로를 이용한 사람은 하루 평균 1,136명이며, 이것도 전년보다 약 30%나 많은 수였습니다. 그리고 남북 경제교류에서도 작년 12월 현재로 교역량이 10억달러를 돌파했습니다.
또한 남북의 이산가족들이 평양과 서울, 금강산에서 거의 정기적으로 상봉하게 되었는데, 그 수는 6.15공동선언이 발표된 2000년이후 작년까지 사이에 1만명 이상에 달했으며, 작년부터는 화상상봉도 진행되게 되었습니다.
남북 대화는 작년 한해동안에 34차례 진행되었는데, 이것도 전년의 25차례를 훨씬 능가하는 수자입니다.
이러한 가운데 작년에 평양에서 진행된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을 8,000명의 남녘 동포들이 관람했으며, 그 과정에 통일연대 대변인 황선 여성이 평양에서 딸을 낳는 해프닝이 일어났습니다.
거족적 통일운동의 질적 발전
작년에 일어난 질적 변화는 통일운동 분야에서도 볼 수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우리의 거족적 통일운동은 강력한 구심력을 갖게 되었습니다.
작년 3월, 6.15공동선언을 지지하고 그 실현을 위해 운동하는 남·북·해외 대표들이 금강산에 모여서, ‘6.15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남·북·해외 공동행사준비위원회’를 발족시켰습니다. 또한 11월에는 그 대표들이 중국 선양에서 회의를 열고, 이 조직을 공동행사를 위한 준비위원회가 아닌 정식 통일운동조직으로 발전시키기로 합의봤습니다. 그 결과 이 공동행사준비위원회는 운동조직으로서의 규약을 갖는 ‘6.15공동선언실천 민족공동위원회’로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도 남·북·해외를 망라하는 범민련(조국통일 범민족연합)이 있었지만, 그보다 훨씬 폭 넓은, 다시 말해서 6.15공동선언을 지지하는 사람이라면 남이든 북이든 해외이든, 사상과 이념, 단체소속과 종교신앙의 차이에 일체 관계 없이 다 손 잡고 나간다는 ‘6.15정신’, 그러니까 ‘우리 민족끼리’ 이념에 기초해서 통일운동을 벌이는 조직체가 탄생했던 것입니다.
재일동포들의 통일운동도 이 ‘6.15민족공동위원회’ 해외측위원회에 망라되었으며, 지금은 민단도 꼭 여기에 함께 참가할 것을 호소하고 있는 중입니다.
(2)우리 민족 대 미국의 대결구도 안에서 벌어진 조미대결
다음으로 조미관계인데, 여기서도 질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최근에 조선(한)반도에서는, 조미간의 대립이 격화되면 남녘에서도 그와 연동해서 “부시 정권의 그릇된 대북정책을 반대한다”고 외치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조선(한)반도에서 남북을 불문한 우리 민족 대 미국의 대결구도가 형성되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조미대결 문제도 이제는 이 구도속에서 봐야 합니다.
작년의 조미대결 흐름
작년 한해동안의 조미대결 흐름은 두 단계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제1단계는 미국의 라이스 국무장관이 북을 “폭정의 전초기지”라고 말한 것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이에 대해서 북측은 2월 10일부 외무성 성명을 통해서 핵 보유와 증산 그리고 6자회담 불참을 선언하는 것으로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미국측은 “(북을)주권국가로 인정한다”, “(북을)침공할 의사는 없다”고 말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6자회담이 다시 열리게 되었으며, 9월 19일에는 공동성명이 발표되었습니다.
이 9.19공동성명의 골짜는 6자회담의 목표는 (북을 고립화하거나 북의 핵 폐기를 일방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조선(한)반도의 검증가능한 비핵화를 평화적으로 실현하는데 있다(1항), 그 전제밑에 유엔헌장 및 국제관계 규범을 준수한다(2항), 에너지 교역 및 투자 등의 경제협력을 2자 또는 다자로 증진시킨다(3항), 동북아시아의 항구적 평화와 안전을 위해 공동으로 노력한다(4항)는 합의와, 이를 ‘공약 대 공약’, ‘행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