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기고z진보세력내에서의 분파주의를 경계하자
-반분파투쟁의
역사적
교훈의 견지에서-
송현우(현대사연구가)
역사적으로
진보운동 내부에서의
투쟁은 항상
진정한 진보운동가들과
사이비운동가들 사이의
대결 또는
진정한 진보사상과 진보를 표방하는
사이비사상간의 대결로서
진행되었다.
그리고 이같은 투쟁은
늘 진정한
진보운동가와
진보사상의
승리로 끝났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무정부주의를 고취한 바쿠닌이나
계급적 협조를
설교한 라살을 비롯한 각종
좌우경기회주의자들과의 투쟁을
거쳐 과학적
사회주의사상을 확립했다.
레닌 역시 베른슈타인,
카우츠키와
같은 배신자들과의
치열한 투쟁끝에
마르크스주의를
고수하고 그를 레닌주의로 발전시켜
러시아에서 사회주의
10월혁명을
성취했다.
중국에서도
모택동을 중심으로 하는 중국공산당
핵심인물들이
진독수의 우경노선이나
이립삼의
좌경노선,
장국도의
투항주의 등 기회주의와의
투쟁을 거쳐 중국혁명의
승리를
이루어냈다.
1920년대에 화요파,
ML파,
서상파,
북풍회파 등 여러
분파들에 의한 거듭되는
파쟁으로
말미암아 진보운동에서의 쓰라린 실패를
경험한 우리 나라에서는
항일전쟁 과정에 이들 분파주의나
민족배타주의자들과의
투쟁속에서 자주적인
새 사상이 창시되고
그를 지침으로
해서 사회적
진보의 길을
개척해
왔다.
국내외에서의
이같은 투쟁사는 진보운동내의
분파주의와
그 배후세력에
대해 철저히 경계해야
한다는 교훈을 남겼다.
분파주의의
해악
분파주의자들은
예외없이
개인영웅주의,
공명출세주의,
소그룹주의,
지방주의, 가족주의와
같은 부르주아 및 소부르주아 사상,
혹은 봉건사상의
소유자들이었다.
따라서 그들은
사상,
이론면에서 뿐
아니라
품성면에 있어서도
역시 진보운동가의
모습과는 거리가 먼 사이비
운동가들이었다.
사실
그들의
안중에는 개인의
출세나 공명밖에 없었으며,
자신의
분파적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르지 않았다.
그러면서
자기들의 그같은 정체를
은폐하려고 늘 극단적이고
혼란스러운 구호나
주장을 내걸으면서
가장 견실한 진보운동가처럼
행세했다.
레닌을
반대했던
트로츠키가
e영구혁명론f을 주장하면서
e나사못을 죄어야 한다f는 식의 극단적 언사로 일국사회주의건설을 좌절시키려
한 것이나 중국에서
모험주의적인
e연속도시봉기f를 주장한
e이립삼 노선f은
그 전형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우리
나라의 경우도 해방직후
eML파f의 잔당인 e장안파f가 e즉시
프로레타리아혁명론f과 같은극단적인 구호를
내걸어 변절타락한
저들의 정체를 은페하면서
영도권을
장악하려 했으며, 그에
대항한다는
e화요파f의 잔당 역시
e암야의
등불f 운운
하면서 자기들만이 진정한 혁명가인
것처럼 행세하면서
헤게모니 싸움에 골몰했었다.
결국
분파주의는
모든 것을 분파적
이익의 관점에서만 보고
자기 분파적
목적에 도움이
된다면 덮어놓고
이용했다.
그래서 그들은
저들에게 이롭다고
판단하기만 하면 제국주의의 앞잡이가
되는 것도 서슴치 않았다.
한
때 남한에서 혁명가를
자처한 자들이 제국주의와
반동세력의
고용간첩으로 전략된 사례들도
있었다.
진보세력이나
근로민중의
통일단결은
진보운동에게 있어서
생명이자 힘의 원천이다.
분파주의와
그 해악의 역사적 교훈을
잊지 말고,
이를
철저히 반대배격하는
것은 진보세력을
분열와해하려는 책동이 노골화되고
있는 오늘의 한국에서 절실한 문제이다.
사상적
바탕은 사대주의,교조주의,
민족허무주의
우리
나라의 역대
분파주의자들이
예외없이
사대주의자나 교조주의자,
민족허무주의자들이었다는
사실 또한 주목해야 한다.
그들은
저들의 교조적 관점이나 대국의존적 사고방식을
마르크스주의 고전에
대한 충실성으로
위장하거나 e국제주의f 명분으로
감싸 왔다. 그러나
이것들이 모두 개인의
공명출세욕이나자파의 헤게모니
장악을 노리는
속셈을 감추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는 것은 이미 실천과정에
여실히 폭로되였다.
1920년대에 조선공산당이
해산된 이후도
분파주의자들이 그에
대해 반성하고 민중속에
들어가서 운동을
전개하기는 커녕,
제가끔
코민테른의 승인을 받노라
동분서주하면서 구태의연하게
파쟁만을 일삼았던 사실이
그를 똑똑히
말해주고 있다.
오늘
한국 진보세력내 일부에도
마르크스주의 고전이나
유럽에서 유행된
사상을 비롯한 남의
나라 변혁운동
경험을
금과옥조로 여기며
그것으로 저들의 정당성을
증명해보려고 하는 사대주의,
교조주의,
민족허무주의적 경향들이
나타나고 있다.
참된
진보운동가라면
마땅히 주체 적관점에
서야 할 것이다.
주체적
관점은
운동의 주인으로서의
관점이며,
이는
자주적 입장과 창조적
입장을 견지할 것을
요구한다.
이같은
주체적
관점을
세우는데서 긴요한 문제는
진보운동에 대해서
전 민족적인 차원에서가
아니라 남한의
차원에서만 고찰하려는 반(”¼)국적 시각을 극복하는
문제이다.
최근에
g한국과
북한을 민족적
특수관계에 앞서
주권국가로서 국가 대
국가 관계로 설정해야
한다h는
주장이 보수정치가나
제도언론도 아닌
진보를 자처하는
사람들 입에서 나오고
있는 현실에 경악을
금치 못한다.
이것이야
말로 제국주의가
강요하는 분단이데올로기를 용인하는것
외의 아무것도
아니다.
이북에
대해서 g군사왕조
집단h이니,
g국가사회주의의
실패h 운운하면서
한국 진보운동의 절대적
독자성을 강조하는
이들의 사고방식이야 말로 어느새
그들이 미국과
반동세력이 유포시킨
반북모략선전의 포로가
되고 민족허무주의적
관점에
사로잡히게 되었다는
것을 스스로
드러내놓고 있다.
분파상쟁술의
이용물
진보의
거세말살을
노리는 세력은
항상 진보운동을
와해괴멸시키기
위해서 물리적 폭력을 총동원하거나
이데올로기 공세를
가해 나설 것은 물론,
진보변혁운동의
내부분열또 획책한다.
운동내에
압잡이를 잠입시켜서
감행하는 분파상쟁술은
그 전형적인
수법이다.
반동세력들은
진보운동 안에 운동가로
위장한 간첩,특무들을
잠입시키거나
운동내부의
개인영웅주의자,공명출세주의자들을 포섭해서 저들의
앞잡이로 이용하기도
한다.
그 목적인 단순히
운동내의
동향을 탐지하는데만 있지 않다는
것은 내부에서 복잡한
논쟁을 유발시켰다가
그를 혼란과
대립,
분열에로
유도해 나가는 수법을
보면 명백할 것이다.
1930년대 전반기 항일무장부대
내부에서 벌어졌던
e반민생단투쟁f의
교훈은 그 전형적인
실례이다.
그
내막과 진상은 국제 진보운동사에서도
증명되었다.
또한
2차대전 이전에 일본공산당을
무력화시킨 e후쿠모토(•Ÿ–{)이즘f의
배후에는
공안경찰이 있었으며
전후 일본의 진보역량을
분열와해시킨
과격한 e화염병전술f이나
e산촌공작대노선f의
배후에도
당시 사회주의권의
무력화와 민족해방운동을
비롯한 진보역량의
소멸을 추구했던 미중앙정보국(CIA)이 있었다.
–
–
–
분파주의가
남긴 교훈들은 지금의
한국 진보운동에게도 많은 것을 시사해주고
있다.
한국에서
새로 등장한 한나라당의 이명박 정권이
한미동맹 중시와 반북대결의
본색을 드러내면서
진보·통일
세력에 대한 탄압기도를
노골화고
있는데,
그 한편에서
과거에 진보운동에
몸 담았던 일부
세력이
g반자주연합전선
형성h이니
g종북주의h이니
하고 있는 상황은 결코
스쳐지낼 일이 아니다.
한국의
진보신당이라는
정당은 민주노동당을
나갈 때에 이 e종북주의f라는
표현을 창출해낸
세력들로써 무어졌는데,
그들은
요즘 총선을 앞두고 민주노동당과의
차별성을
인상줌으로써
지지율을
높여보려는데도 이 e종북f을
이용하고 있다.
그들이
북에 대해서 g할 말은
해야 한다h면서 북의
인권문제를 들고
나오는 것은 그 상징적
움직임이다.
심지어
그들은 김태영
합참의장이 북에 대한 e선제공격f
발언을 했다는 것이
국회 의사록에도
기록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비판하는척
하면서 오히려 g신경질적인
대응h이니,
g치킨게임h이니
하면서 북측의 대응에
문제가 있는듯이
말했다.
지금
한반도 정세를 경색국면에로
몰아가고 있는 이명박
정부의 책임을 엄격히
추궁하고 그들에게
6.15와
10.4의
존중·이행을
촉구해야 할 마당에
쟁점과 초점을 흐리게
해서까지 해서 설사
총선에서 몇표를 얻게
된들 그것이 무슨
가치가 있으며,
그처럼
자기 당파의 이익 밖에
안중에 없는 그들의
행동을 누가 진보로
보겠는가.
그들의
주장에 본의 아니게 동조하거나
기만농락당하지 않게 경계해야 할 것이다.
2008.4.6
¦글의
원본은 일본어로
씌여졌으며 이를 대동연구소에서
번역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