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5공동선언의 최종목표, 종착점을 향하여
강민화(대동연구소 소장)
〈차례〉
2. 조국통일 이정표로서의 6.15공동선언의 본질과 최종목표
6.15공동선언이 발표된지 5년이 되는 뜻깊은 해도 이제는 두달밖에 남지 않았다.
이 공동선언이 남, 북, 해외 온 겨레의 열렬한 지지를 받는 속에서 우리 민족 최대의 숙원인 조국통일을 이룩하는데서 이전에 볼 수 없던 경이적인 사변들을 불러 일으키고 마침내 통일의 전환적 국면을 가져왔으며 그것이 올해에 평양과 서울에서 열린 6.15 및 8.15민족대축전들에서 상징된 것처럼 최절정에 달했음은 이미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다.
올해를 자주통일의 원년으로 하자는 목표를 내걸어 이처럼 통일운동의 전례없는 앙양으로 그 목표 달성에 기여한 겨레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것은 “이제는 6.15공동선언을 말로만 지지하고 실천하자고 외치던 단계는 지났다”는 것이며, 그들은 지금 6.15공동선언의 전면적 실천을 자기들의 과제로 내세우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앞으로 통일운동 분야에서 충분히 토의되고 과제화될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6.15공동선언 발표후 미숙하나마 그를 지지하고 실천하는데 기여해 보려고 연구와 집필을 진행해온 한사람으로서 이 글에서 지금까지 자신이 6.15공동선언에 대해서 연구하고 주장해온 내용들을 현시점에서 다시 정리하고, 그에 토대해서 6.15공동선언을 먼 장래가 아니라 하루빨리 전면적으로 실천해야 할 오늘의 요구에 따라 어떻게 되어야 공동선언이 실현되었다고 말할 수 있으며, 또 그를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나름대로 고찰해보고 그를 통해서 앞으로 새롭게 발전하게 될 거족적인 자주통일운동에 다소나마 기여하고자 한다.
1) 평양 수뇌상봉과 회담에 임한 쌍방의 전략적 의도
주지하는 바와 같이 6.15공동선언은 2000년 6월, 분단사상 처음으로 평양에서 남북의 양 수뇌들이 상봉하고 회담을 한 결과물로서 발표된 문건이다.
그런데 6.15공동선언이 발표된 당시부터 지난 5년동안, 북측에서는 이것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통일전략과 의도에 따라 발표되었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남측에서는 공동선언을 ‘햇볕정책’이라고 일컬어지는 김대중 대통령(당시)의 대북정책의 성과라고 주장하는 등 쌍방이 서로 다른 견해와 주장을 펴왔다.
가령 손벽을 친다고 해도 한쪽 손만 가지고는 칠 수 없는 것처럼, 공동선언이라는 문건도 복수(양자)의 합의에 의해서 발표되는 것이다. 따라서 일반적으로는 공동선언이라는 문건에 사인한 양 당사자의 의도가 골고루 반영되었거나 혹은 복수(양자) 합의과정에 주도권을 쥔 한쪽 당사자의 의도가 강하게 반영되었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럼 6.15공동선언은 어떤(누구의) 의도를 반영해서 나왔을까? 이제는 공동선언이 발표된지 5년이 지나고 이를 전면적으로 실천할 요구가 나고 있는 것 만큼, 이 물음앞에서 그 누구의 눈치를 보거나 ‘고려’를 앞세울 것 이 아니라 자기 입장을 명백히 밝힐 때가 되었다고 본다. 그것은 결코 민족공동의 통일이정표로서의 6.15공동선언이 갖는 숭고한 뜻과 의의를 부정하거나 손상시키는 일이 아니라, 오히려 공동선언을 정확히 인식하고 전면적으로 실천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먼저 6.15공동선언에 사인한 남북 양 수뇌의 전략적 의도에 대해서 현시점에서 다시 상기해보기로 한다.
(1)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전략적 의도
먼저, 평양수뇌상봉과 회담에 임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전략적의도는 어떤 것이었는가?
이미 오래전부터 김일성 주석의 후계자로서 활동해온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김일성 주석의 급서후 이북이 과연 앞으로 어느 길을 어떻게 가는가고 주목하는 세계여론에 대해서 “나에게서 그 어떤 변화도 바라지말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그 선언대로 “모든 것을 수령님식대로”, 다시 말해서 김일성 주석의 생전의 뜻을 그대로 계승하고 완성할 것을 필생의 사명으로 간직하고 이북을 이끌고 있다. 그것은 조국통일에 임하는데서도 마찬가지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1995년 7월, 김일성 주석의 1주기에 즈음해서 평양을 방문한 문익환 목사의 부인 박용길 여사를 만나서 “수령님께서 그토록 바라시던 통일을 위해 김정일이 있습니다. 7천만에게 통일을 주지 못하면 김정일이 아닙니다.”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리고 다음해인 1996년 11월 24일에는 판문점을 찾아 김일성 주석이 생의 마지막에 통일관련문건에 수표한 “김일성 1994. 7. 7”이라는 친필이 새겨진 비석앞에서 “나는 수령님의 유훈대로 우리 대에 반드시 조국을 통일하려고 한다. 수령님께서 우리 인민에게 줄 가장 큰 선물은 조국통일이라고 하시었는데 나는 조국을 통일하고 통일된 조국을 우리 인민에게 반드시 선물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 발언들을 통해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통일의지, 통일전략을 엿볼 수 있다. 그것은 우선 조국통일을 위한 자신의 노선과 활동은 김일성 주석의 통일유훈의 계승이라는 것이며, 또한 조국통일은 먼 장래가 아니라 우리 대에 반드시 실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일성 주석의 통일유훈에 따라 우리 대에 반드시 조국통일을 실현한다는 것, 이것이 바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통일전략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통일전략은 그가 1997년 8월 4일에 발표한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조국통일유훈을 철저히 관철하자』는 논문에서 “경애하는 김일성 동지의 숭고한 뜻을 이어 조국통일위업을 실현하는 것은 우리 당과 인민의 혁명적 의무이고 의리이며 우리 세대에 맡겨진 성스러운 민족적 임무이다(*1)”라고 공식표명되었다.
그러면 여기서 말하는 김일성 주석의 조국통일유훈이란 어떤 것인가?
하나는 우리 나라와 민족은 하나이며 절대로 둘로 갈라져서는 안된다고 하는 ‘하나의 조선’노선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이미 오래전에 우리 나라 강토와 우리 민족은 하나의 유기체와 같은 것이며 조선은 영원히 하나이라는 것은 자신의 확고한 의지라는 의사를 표시함으로써 김일성주석의 ‘하나의 조서노선’을 철저히 고수해왔다.
또 하나는, 김일성 주석이 1972년 5월에 이남의 밀사(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일행을 만나서 제시하고 그 해에 발표된 7.4공동성명에 반영되었던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의 조국통일3대원칙, 그리고 1993년 4월에 작성발표한 『조국통일을 위한 전민족대단결 10대강령』과 1980년 10월에 제시한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위에서 본 1997년 8월 4일논문에서 이를 “김일성 동지께서 위대한 주체사상과 조국통일을 위한 투쟁과정에 이룩하신 고귀한 경험에 기초하여 조국통일의 근본 원칙과 방도들을 전일적으로 체계화하고 집대성한 조국통일의 3대헌장(*2)”이라고 정식화하고 “조국통일을 위한 투쟁에서 정세의 변화에 따라 구체적인 방법은 달라질 수 있어도 조국통일의 근본원칙과 입장에서는 변화가 있을 수 없다. 우리는 앞으로 정세가 어떻게 변하고 환경이 어떻게 달라지든 조국통일 3대헌장에 기초하여 조국통일위업을 실현하여야 한다.(*3)”고 강조했다.
이처럼 ‘하나의 조선노선’과 ‘조국통일 3대헌장’으로 구성되는 김일성 주석의 통일유훈에 따라 우리 대에 반드시 통일을 실현하겠다는 전략을 세상에 선포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그후 1998년 4월 18일, 남북조선 제정당, 사회단체 대표자연석회의 50주년에 즈음해서 평양에서 열린 연구토론회에 보낸 서한 『온 민족이 대단결하여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이룩하자』에서 민족대단결에 관한 김일성 주석의 생전의 뜻을 실현하기 위한 ‘전 민족대단결 5대방침’을 제시하여 자신의 통일전략을 행동강령으로 구체화하였으며 2000년 정초에 백두산정에서 용단을 내리고 6월의 역사적인 평양 수뇌상봉과 회담에 임했던 것이다.
(2) 김대중씨의 전략적 의도
다음으로, 김대중씨는 어떤 전략적 의도를 가지고 평양 수뇌상봉과 회담에 임했는가?
김대중씨로 말하면 이남에서 ‘정치 9단’이라고 불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