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자주이념 연구 2
강민화(대동연구소 소장)
q 차 례 r
(1)
발생 근원과 역사적
경위
(2) 일제 식민지 지배에 대한
재조명
3) 현 시기 조선(한)반도에서 제기되어 있는 민족문제
(1)
조국통일
@새롭게 이루어진 조국통일의
본질 규정
A조국통일
노선과 헌장의 도출 및 통일 정세의 근본적 변화
(2)
해외교포 문제
@해외교포 문제에 본질과 실태
A해외교포문제에 대한 주체적 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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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제는 역사적으로 항상 첨예하게 제기되어 왔으며, 냉전 이후라고 불리우는 현재도 마찬가지이다. 그것은 약소국가(또는 민족)에 대한 제국주의적 및 지배주의적 침략과 압력은 말할 것도 없고, 하나의 국가안에서 행해지는 인종적 및 민족적 차별과 억압이 예나 지금이나 의연히 극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세계의 수 많은 학자, 전문가들은 이 민족문제와 민족 그 자체에 대한 논의를 엄격히 구분한다. 필자 역시 이 글에서 g민족·민족문제h라고 표기하고 있다.
그것은 민족 그 자체에 대해서 논의한다고 할 때는 민족의 본질이나 형성, 발전 등에 대해서 다루어지지만, 민족문제라고 할 때는 민족의 형성 이후에 그들 사이에서 제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즉 세계에 존재하는 3천여개 민족들은 제각기 형성·발전 경위와 시기가 다르지만, 일정한 역사적 과정을 거쳐서 형성된다는데서는 공통성을 갖는다. 그런데 지구상에서 민족문제가 발생한 것은 민족이 형성된 이후부터였다(32).
좀더 자세히 보면, 민족의 발생 이후 국가의 성립과 더불어 발생한 민족문제는 초기에 여러 민족들이 지닌 개별적 특성을 살리는 문제, 또는 민족들의 문화적 가치에 관한 문제로서 논의되었다. 그것이 마르크스\레닌주의에 의해서 계급해방의 한 구성부분으로서 제기되게 되었으며 마르크스주의에서는 민족간의 불평등을 해소하는 문제로, 그리고 레닌주의에서는 식민지 민족문제로서 취급되었다.
결국 민족문제는 지금까지 지배민족 대 피지배민족의 문제, 대(å)민족 대 중소민족의 문제 등, 주로 민족 분쟁의 문제로 이해되어 왔으며, 지금도 그것이 통설로 되어 있다.
그러나 민족자주 이념의 기초인 주체의 민족론은 민족문제가 고전에는 어떻게 정식화되었든 반드시 주체사상으로부터 출발해서 풀어야 한다는 입장에 따라서 g민족문제는 본질에 있어서 민족의 자주성을 옹호하고 실현하는 문제(33)h라고 새로운 정의를 내렸다.
결국 민족의 운명을 어떻게 개척해 나가겠는가 하는 문제가 곧 민족문제이며, 이것은 본질에 있어서 민족의 자주성에 관한 문제라는 것이 주체의 민족론의 견해이다.
이렇게 볼 때, 민족문제는 민족의 운명 문제이며 본질에 있어서 민족의 자주성을 옹호하고 실현하는 문제라고 정의하는 주체의 민족관에 기초한 민족자주 이념은 민족문제 해결을 위한 이념이라고 말할 수 있다.
민족 안에는 여러 계급과 계층이 있고 그에 따라 매 구성원들 사이에는 이해관계 및 사상과 정견의 차이 등이 있게 된다. 그러나 민족 구성원들이 제각기 자기 입장과 이해관계를 주장한다 해도 그들이 속하는 포괄적 집단인 민족의 운명문제가 제기되면 더는 어쩔 수 없게 된다. 그것은 과거에 우리 나라가 일제의 식민지 지배하에 놓이게 되자 국내의 지배계급이든 피지배계급이든 관계 없이 망국노, 식민지 노예의 운명이 똑같이 차례졌던 사실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래서 주체의 민족론은 민족의 운명이자 개개의 운명이며, 자주성을 실현해 나가는 과정을 통해서 민족의 운명이 개척된다고 주장한다.
주체의 민족론에 의하면 민족문제에는 민족이 외적인 강요나 침해로부터 벗어나는 문제일 뿐 아니라, 민족 고유의 본성에 기초한 독자적이고 창조적인 발전에 관한 문제를 모두 포괄하게 된다. 다시 말해서 민족문제에는 민족의 독자적이고 자립적인 발전을 기하는 문제와 함께 민족의 독자적 발전을 저해하는 외적인 강제나 압력을 어떻게 막아내는가 하는 두 측면이 포괄된다.
이같은 정의에 의하면 민족문제의 내용은 첫째로 민족이 자주성을 옹호하고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되는 문제, 둘째로 식민지 민족해방문제, 셋째로 민족들간의 불평등을 없애는 문제라는 세가지로 이루어지게 된다.
32.민족문제를 연구하는 일본의 한 언론인은 g민족은 예로부터 존재했으나 e민족문제f라는 형태로 국제사회에 나타나게 된 것은 근대 국민국가의 성립 이후였다h고 하면서 g현재까지도 민족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무리한 국가 형성과 구분이 원인h이며 g그같은 상황에서 자기 민족 단위로 독립국가를 새롭게 형성하려 하는데로부터 민족문제가 제기된다h고 지적했다.\Œjw¯°âèÆÍœ©x,©úI, 1987년\
33.김일성 w우리 민족의 대단결을 이룩하자x(1991.8.1), w김일성저작집x 43권, 168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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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조선(한)반도에서는 민족문제가 어떻게 발생되어 왔는가.
우선 그 발생 근원은, 조선(한)반도가 동북아시아의 대륙과 바다가 만나는 지점에 대국들에 포위되다싶이 위치해 있는 것으로 해서, 항상 열강들의 각축전 마당으로 되어 왔다는 지정학적 위치에 있다(34).
고조선시기, 삼국시기, 신라·발해시기(35), 후삼국시기, 고려시기, 이조시기로 이어지는 우리 나라 역사를 보면 조선(한)반도에서의 민족문제는 고조선시기는 물론 특히는 삼국시기 고구려에 대한 수(ä@)나라, 당()나라 의 침략(7세기), 고려시기의 거란(_O)족(993), 몽고(1211), 왜적(1350)으로부터의 침략과 명(Ÿ)나라에 의한 외압과 간섭(1388), 이조시기의 임진왜란(1592∼1598) 등으로 대표되는 외세의 침략과의 싸움이라는 대외적 측면에서 주로 제기되었다.
삼국시기에 국내적으로 제기된 것은 주로 영토문제이며 민족문제가 아니었다. 그러나 유독 3국시기에 내부적으로 민족문제가 제기되었다면 신라가 당나라를 등에 업고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킨 끝에 국토를 대동강 이남으로 축소시킨 사례를 들 수 있다. 왜냐 하면 이는 민족 대 외세의 관계로 보면 우리 민족과 당나라간의 싸움이었으나 국내적으로 보면 당나라를 등에 업은 신라 대 고구려, 백제간의 싸움, 다시 말해서 민족내적인 싸움이라고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후 조선(한)반도에서는 나라와 민족의 존망과 관련되는 엄중한 차원에서 민족문제가 제기되게 된다. 특히 이조 500년동안의 사대주의와 쇄국정책(36), 지배층 내부의 부폐와 외세를 등에 업기까지 해서 벌어졌던 권력다툼은 36년간에 걸치는 일제 식민지지배를 허용하는 바탕으로 되었다.
당시 조선이 일본의 침략 앞에서 얼마나 무력했는가 하는 것은 강화도 앞바다에서 일어난 e운양호(_gåj)사건f(1875) 때 운양호가 쏜 대포는 강화도 포대를 파괴했으나 조선측 대포 사거리는 운양호까지 이르지 못했거나, 근대장비를 갖춘 일본군이 영종도(i@)에 상륙해서 민가를 불태우는 등의 만행을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화승대밖에 갖지 못했던 조선군은 그들로부터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했다는 사실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그후 불평등한 e조일 수호조약f(강화도조약 1876.2.27)으로부터 일제의 강요에 의해서 날조되었던 e한국보호조약f(을사조약 1905.11.17)을 거친 끝에 e한일합병조약f(1910.8.22)에 의해서 반만년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되고 말았다. 그리하여 이 때부터 조선(한)반도 민족문제는 식민지 민족문제로서 제기되게 되었다.
36년간에 걸친 일제 식민지지배는 지금도 우리 민족의 원한과 저주의 대상으로 되어 있다. 필자는 오늘까지 수 많은 학자, 전문가들에 의해서 다루어지고 규탄되어 왔던 이 문제에 대해서 민족자주 이념의 견지에서 재조명해보려고 한다.
위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일본 당국은 해방후 오늘까지 대조선 식민지 지배시기에 일제가 저지른 과거 죄행에 대해서 반성하기는 커녕 기회있을 때마다 오히려 그를 정당화하는 궤변을 늘어놓았다.
전 일본 외상 시이나 에츠사부로는 g일본의 침략을 제국주의적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영광의 제국주의h라고 했으며, 1965년의 e한일조약f 체결시 일본측 대표였던 다카스기 시이치는 g(조선을)식민지로 삼았다고 하지만 일본은 좋은 일을 했다h고 말했다. 심지어 전 문부상 후지오는 g침략을 당한 쪽에도 문제가 있다h는 망언을 늘어놓기까지 했었다. 이같은 자세는 일본 수상을 비롯한 정부 각료들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나 교과서를 통한 역사왜곡, g창씨개명은 조선인들이 스스로 원했다h(현직 외상 아소 타로)는 등의 행동이나 망언들로 계속 이어지고 있다.
더욱이 엄중한 것은 이남의 일부 학자나 우익세력들이 이같은 주장에 동조하면서 마치나 일제가 과거 우리 나라나 우리 민족에 이익을 가져다준 것처럼 말하면서 이른바 e식민지 근대화론(37)f을 주장하고 있는 사실이다.
과거에 일제는 조선의 광산, 토지 등을 모두 자기 소유물로 만들었다. 또한 그들이 조선땅에 공장, 철도, 항만 등을 만들었다고 하지만 그것들은 조선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자기 이익을 위해서 만들고 사용한 것들이며, 일제는 폐전과 더불어 그것들을 모두 파괴하고 철수했다. 당시 조선은 오히려 정상적인 발전이 억제당하고 세계사의 전진에서 크게 뒤떨어졌으며, 그 후퇴정도는 수세기에 맞먹는 것이었다.
이같은 일제 식민지지배의 죄악은 민족자주 이념의 견지에서 이를 다음과 같이 몇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로, 일제는 우리 나라에 대한 식민지 지배를 통해서 조선과 우리 민족의 정복이 아니라 말살을 추구했다.
이에 대해서는 일본의 양심적 또는 진보적인 사람들도 인정하고 있다. 일본의 한 연구집단은 g근대 일본의 식민지하에서 추진되었던 일본인 학자들에 의한 조선사연구에서는 c문관을 존중하는 이조문화가 의연히 일본 헤이안(œÀ)시대 수준에 있다고 하는 e정체론f, 침략에 의해서 끊임 없이 외국의 영향을 받아왔으므로 스스로가 역사를 창조할 능력이 없다고 하는 e타율성사관f, 조선문화는 대륙문화의 파동에 불과하다고 하는 e만조(Þ©)일체론f, 나아가서 일본인과 조선인의 선조는 같으며 조선반도는 예로부터 일본이 지배해 왔다고 하는 e일선동조론(úN¯c_)f 등이 공공연히 주장되었다(38)h고 지적했다.
특히 일제가 식민지 지배시기에 조선민족의 말살을 위해서 그들로부터 말과 글은 물론 성(©)까지 빼앗던 사실은 아이러니하게도 민족의 징표 가운데서 핏줄과 언어의 공통성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증명하게 되었다.
둘째로, 일제의 그같은 민족말살 정책으로 인해서 우리 민족 내부에는 그전부터 만연되어 있던 사대주의에다가 민족 허무주의까지 조장되게 되었다.
그리고 셋째로는, 이같은 일제 식민지 지배가 그후 우리 민족이 겪게 될 국토의 양단과 민족분열의 터전이 되었다.
일본은 이 문제와 관련해서 g과거의 식민지 지배는 몰라도, 조선이 분단된 책임까지 우리에게 있겠는가h고 좀처럼 시인하려 하지 않으며, 한때 무라야마 내각 당시 총리 스스로가 그 책임을 시인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과거에 일제가 우리 나라를 식민지로서 지배했기 때문에 해방된 조선(한)반도가 전후처리의 마당으로 되었으며 그에 따라 소련과 미국이 조선(한)반도 남북에 각각 들어간 것이 훗날의 분단에로 이어졌다는 것은 절대로 지울 수 없는 사실이다.
34.g민족문제는 주변의 경계(«E)민족이나 대(å)민족, 대해(åC)안의 고립된 소수민족, 또한 분산민족들속에서 발생하기 쉽다.h\ Œjw¯°âèÆÍœ©x,©úI, 1987년\
35.이 시기에 대해서 특히 이남에서는 e통일신라시기f라고 부르는 것이 통설처럼 되어 있다. 그러나 필자는 신라에 의한 e삼국통일설f이란 신라가 당나라를 등에 업고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키기는 했으나 그 대가로 우리 나라 영토를 대동강 이남으로 축소시켰으며, 그후 고구려가 위치했던 지역에 발해가 엄연히 존재했다는 사실 때문에 성립되지 않는다. 그래서 필자는 이 시기를 e신라·발해시기f라고 표기한다.
36.대원군은 관민이 굳은 결의밑에 하나가 되어 쇄국정책을 관철하면 세계의 움직임과는 무관하게 조선은 영원히 안정하다고 믿었다. 프랑스(1816)와 미국 함대를 격퇴(1866-셔먼호 사건)한데 힘 입은 그는 서울을 비롯한 전토에 g침범해 오는 양이(mÎ)와 싸우지 아니함은 그들과 화목해지는 것이며 화(a)를 주장함은 매국h이라는 뜻의 e척화비f (Ëaè)를 세웠다.
37.이남에서 주장되는 e식민지 근대화론f은 영국의 제국주의 광신자 세실 로즈가 제국주의 식민지 지배가 낙후한 피식민지국에 e진보f와 e근대문명f을 가져다 준 것처럼 주장한 e식민지 유익설f의 재판이다.
38.21¢I硏ðÒw¯°Ì¢En€x(¶tV, 200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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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현 시기 조선(한)반도에서 제기되어 있는 민족문제
주체의 민족론은 조선(한)반도 민족문제가 지난날에는 일제 식민지지배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민족해방문제로서 제기되었다면 오늘은 조국통일을 실현하는 문제로서 제기되어 있다고 보고 있다(39).
k조국통일의 본질l 해방과 더불어 시작되어 60여년동안이나 지속되고 있는 조선(한)반도의 분단 상황에 대한 국내외의 견해와 해석은 참으로 각이하다. 예컨대 분단의 근원에 대해서만도 어떤 사람들은 우리 나라가 미소 양국에 의해서 분단되었다고 주장하며, 또 어떤 사람들은 사상과 체제를 달리 하는 남북이 무력으로 다툼으로써 우리 나라가 분단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 분단상황을 극복하고 통일을 이룩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어떤 사람들은 남북의 두 체제중 어느 한쪽이 이기고 지는 결과로 통일이 이루어진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또 어떤 사람들은 통일은 우리 민족의 힘만 가지고 이루어질 수 없고 주변 강대국들의 관여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조국의 통일문제를 특정 사상이나 체제 무제, 또는 국제정치 문제로 보는 견해들이 적어도 1970년대쯤까지 거의 상식처럼 되어왔다. 그로 인해서 당시까지만 해도 조국통일 문제의 본질에 대해서 그 누구도 정확히 규정하지 못했으며, 우리 겨레는 그저 안타깝게 분단상황을 한탄하기만 했었다.
그러나 이북에서는 이 시기에 조국통일문제는 외세에 의한 국토의 양단에 의해서 발생했으며 조국통일은 전국적 범위에서 민족의 자주권을 실현하는 문제라고 통일문제의 본질규정 자체가 완전히 새롭게 이루어졌다(40).
좀더 정확히 정리하면, 조국통일 문제는 g제2차 세계대전의 종결과 함께 외세에 의하여 국토가 양단됨으로써 생겨난 문제(41)h이며, g남조선에 대한 외세의 지배와 간섭을 끝장내고 전국적 범위에서 민족의 자주권을 확립하여 갈라진 민족의 혈맥을 다시 잇고 하나의 민족으로서 민족적 단합을 실현하는 문제(42)h라는 것이 이북에서 새로 정의가 내려진 통일문제의 발생 근원과 본질이다. 여기에는 조국통일문제는 주변나라들이 취급하는 국제문제도 아니고 남북의 당국만이 취급하는 행정문제도 아니며, 특정한 계급이나 세력만이 관여하는 사상·체제 문제도 아닌 우리 겨레의 운명에 관한 문제이며 우리 민족의 생명에 관한 문제(43)라고 하는 뜻이 담겨져 있다. 이것이야 말로 조국통일관의 일대 전환이었다.
그럼 어째서 조국통일문제가 이데올로기 문제나 체제 문제가 아닌 민족문제로 되는가? 그것은 조국의 분단이 우리 민족 스스로가 택한 결과가 아니라, 우리 민족의 의사에 관계 없이 미국이라고 하는 외세에 의해서 인위적으로 초래된 문제이며 이 분단으로 말미암아 민족 전체가 재난을 겪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는 이남의 한 신학자도 g한반도 분단에는 단지 냉전체제적 대립을 뛰어넘는 그 무엇이 있음을 웅변하는 것이었으며, 그것은 다름아닌 북한과 미국의 대립을 축으로 하는 민족문제가 그 중심에 있다는 것이다(44)h라고 지적했다. 또한 이남의 한 통일운동가는 g통일은 분명히 민족문제입니다. 민족이 있고서 이념과 제도가 있는 것입니다. 이념과 제도 차원에서 통일을 하려고 하면 일방이 일방을 먹을 수밖에 없습니다. 양체제, 이념이 생긴 것은 분단이라는 것의 결과로서 나타난 것입니다(45)h라고 주장했다.
결국 조국통일 문제는 제2차 세계대전 종결당시 소련의 남하를 막기 위해서 부랴부랴 조선(한)반도를 38도선 이북과 이남으로 분할했던 미국이 해방후 e전후처리f의 명목으로 조선(한)반도 이남에 상륙해서 이 지역을 강점함으로써 발생한 문제(46)로서, 이것은 우리 민족 내부의 사상·체제적 대립을 해소하는 문제도 아니고 주변나라들이 관여하는 국제문제도 아닌 우리 민족 대 미국 사이에서 제기된 민족문제이다.
A조국통일 노선과 헌장의 도출 및 통일 정세의 근본적 변화
k조국통일의 성격과 주체l이북에서는 이처럼 조국통일 문제를 민족문제로 보는 주체적 시각에 따라서 조국통일의 성경과 주체, 조국통일의 근본 원칙과 기본담보, 방도로 구성되는 통일 헌장이 제시되었다. 필자는 이것이 민족자주 이념, 더 넓은 의미로는 주체사상에 기초해서 제시된 통일정책이라는 견지에서 이하, 이것을 e주체의 통일론f이라고 부르기로 한다.
주체의 통일론은 무엇보다도 조국통일문제의 본질을 민족문제로 보는 시각에 기초해서 조국통일의 성격은 특정 계급이나 세력만이 다룰 문제도 아니고 주변 나라들이 관여하는 문제도 아닌 전 민족적 위업이자 우리 민족 자체가 해결해야 할 자주적 위업이며(47) 따라서 조국통일의 주체, 다시 말해서 그 직접적인 담당자는 남·북·해외를 막론한 우리 민족(48)이라고 주장한다. 2000년에 평양에서 발표된 6.15공동선언에는 이것이 e우리 민족끼리f라는 기본이념 안에 함축되어 있다.
k조국통일의 노선과 헌장l주체의 조국통일론은 위에서 본 바와 같은 통일의 본질과 성격 규정에 기초해서 g조선은 하나의 유기체와 같은 것이며 따라서 하나로 되어야 살 수 있고 둘로 갈라지면 살 수 없다h고 하는 e하나의 조선f노선을 도출해내었다(49).
이 노선은 분단으로 인해서 남북간에 차이가 생겼다고 하면 남북 양 체제와 관련한 이질성뿐이며, 이는 반만년동안에 형성되고 공고화된 우리 민족의 동질성에 비하면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50)고 하는 과학적 분석과 우리 나라, 우리 민족은 둘이 아니라 영원히 하나이라는 확고한 의지에 기초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주체의 조국통일론은 이에 머무르지 않고 우리 민족이 통일을 이룩하는데서 견지할 근본 원칙과 통일의 근본 담보, 근본 방도를 제시했다. 그것은 김일성 주석이 1972년 5월 3일에 이남의 이후락 중앙정보부장(당시)을 만나서 제시하고 그 해 7월 4일에 발표된 남북공동성명에 명기되었던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의 조국통일 3대원칙, 또한 1993년 4월 6일에 발표한 전 민족대단결 10대강령과 1980년 10월 10일에 조선로동당 제6차대회에서 발표한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이다. 이것은 훗날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의해서 e조국통일3대헌장f으로 정식화(51)되었다.
그에 의하면 조국통일 3대원칙은 g조국통일문제를 민족의 의사와 이익에 맞게 민족 자체의 힘으로 풀어나갈 수 있는 근본 입장과 근본 방도를 천명한 조국통일의 초석(52)h이며, 민족대단결 강령은 g조국통일의 주체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정치강령(53)h이자 통일의 근본 담보(54)이며, 연방제 통일방안은 g통일국가의 전모와 그 실현방도를 밝힌 설계도(55)h로서의 위치를 각각 차지한다.
이북에서는 이 조국통일 3대헌장에 대해서 민족의 자주권과 존엄을 생명으로 여기는 민족자주 정신으로 일관되어 있으며 남북 화해와 전 민족의 대단결을 이룩해서 조국을 평화적으로 통일하려는 숭고한 조국애, 민족애를 구현하고 있다(56)고 위치부여하고 있을 뿐 아니라, 이 헌장을 아무리 정세와 환경이 변하고 조국통일의 방법론이 달라져도 변함 없이 틀어쥐고 나갈 통일 헌장(57)으로 규정하고 있다.
k통일관과 통일실천에서의 일대 전환l위에서 본 것처럼 조국통일의 본질규정이 새롭게 이루어지고 그에 기초해서 통일의 원칙과 정치강령, 방도가 제시된 것은 이북의 통일 정책 차원에 머무르지 않고 전 민족적 범위에서의 통일관과 통일 실천(통일운동)에서 일대 전환을 가져왔다.
무엇보다도, 우리 민족의 통일관 면에서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그전까지만 해도 겨레의 통일관이라고 하면 조국통일이야 간절히 바라지만 막상 그를 실현하자고 하면 결국 물과 기름처럼 되어버린 남북의 사상과 체제가 맞부닥치게 되고 동족끼리 다시 피를 흘리지 않으면 안된다고 보는 견해와 입장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조국통일이 민족의 자주권문제라는 본질규정에 의해서 우리 겨레는 통일은 민족내부에 아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