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다한 이야기
―6.15공동선언의 참뜻과 재일동포―
강민화(대동연구소 소장)
〈 차 례 〉
글을 시작하면서
1.민족의 논리로 일관된 6.15공동선언
2.현 시점에서 다시 보는 6.15공동선언
3.6.15공동선 발표후 7년간의 교훈
4.재일동포의 입장에서(맺음을 대신하여)
이남의 ‘민주노동당’과 ‘한국진보연대’(준), ‘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를 비롯한 정당, 단체들은 7월 23일 서울에서 ‘재일동포초청토론회’를 갖기로 하고 여기에 재일동포 각계대표들을 초청했다. 재일동포측도 이 토론회의 취지에 공감하고 초청에 기꺼이 응했으며 통일운동, 인권단체 임원들과 민족학교 교원 등 4명으로 참가대표들을 구성했다. 그러나 막상 방문수속에 들어가자 남측의 해당당국은 일행이 제출하려 했던 ‘여행증명서’발급신청 서류의 접수를 완고하게 거부하고 그 대신 일행을 마치 범죄인이나 망명자처럼 취급할뿐 아니라 법에 따라 철저히 보호되어야 하는 개인정보사항의 기입까지 강요하는 서류를 강요해나섰다. 이는 개인자격의 방문자들도 아니고 정당, 단체들의 초청을 받고 그들이 주최하는 행사에 참가하기 위해서 이남을 방문하려 한 재일동포 대표들에게 있어서 더 없이 굴욕적인 처사일 뿐 아니라 서로 상대방을 인정하고 존중할데 대한 6.15정신과 심히 어긋나는 것으로서 일행은 이에 도저히 응할 수 없었다. 한편 이남의 초청측도 이에 대해서 당국에 강력히 항의하고 어떻게 하나 행사가 계획대로 진행되도록 전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결국 일행의 남행길은 차단되고 토론회는 무산되었다.
이번 토론회에 초대된 한사람인 필자는 남녘동포들과 대화를 진행하는 마음으로 자기 토론문을 다시 정리해서 아래에 소개한다.
6.15공동선언이 발표되어 7년 세월이 흘렀습니다.
저는 그동안 연구를 진행해 오면서 6.15공동선언이 어째서 통일의 이정표로서의 당위성과 의의를 갖게 되는지, 또한 어째서 그만한 위력을 발휘할 수 있었는지, 반면에 같은 공동선언을 놓고 어째서 해석이 갈라지거나 이를 왜곡하는 현상까지 나타나는지 하는 문제들에 대해서 생각해 왔습니다. 그러다가 요즘에 와서 6.15공동선언의 참뜻이 무엇인가, 이에 대해서 꼭 알아야 하며 그래야 공동선언을 정확히 인식하고 실천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저는 모처럼 마련된 이 자리에서 6.15공동선언의 참뜻, 다시 말해서 공동선언에는 어떤 논리가 관통되어 있는가 하는 문제를 중심으로 말씀드리기로 하겠습니다.
1.민족의 논리로 일관된 6.15공동선언
6.15공동선언에 관통되어 있는 것은 특정 계급이나 세력의 논리가 아니라 민족의 논리입니다.
한마디로 민족이라고 해도 제각기 그 발생과 형성 경위가 다르며, 따라서 민족에 대한 견해도 다양합니다. 그래서 민족에 대한 고찰에서는 철저한 주체적 시각이 요구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민족의 논리에 대해서도 민족에 대한 기존의 서구적 시각을 잣대로 삼다가는 절대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특히 엄연히 세계에는 3천여의 민족이 존재하며, 지금도 지구상 여러 곳에서 민족문제가 제기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민족은 이미 낡았다”고 보는 관점이나 자세는 이 문제에 대한 이해를 오히려 저해할 것입니다.
6.15공동선언에 관통되어 있는 민족의 논리는 우리 민족이 단일민족이라는데서 출발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60여년의 분단으로 인한 사상·체제상의 이질성이란 반만년의 역사를 통해서 형성되고 공고화되어 온 우리 민족의 단일성에 비하면 결코 문제로 될 수 없다는 견해와 관점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 민족은 반만년의 역사를 하나의 언어와 핏줄, 문화를 가지고 한 영토에서 살아온 단일민족이며, 비록 지금은 남과 북으로 갈라져 있지만 민족을 이루는 핵심적 징표인 핏줄과 언어의 공통성은 결코 상실되지 않고 있습니다.
제가 말하는 핏줄의 공통성이란 생물학적인 의미에서의 순혈주의가 아닙니다. 이는 인간의 사회적 집단인 민족의 징표라고 하는 사회적 개념입니다. 이와 관련해서 유럽의 한 교포학자는 “인간은 자기 선조가 한 지역에서 오랫동안 살면서 이룩한 물질문명과 정신문명, 사회문화의 영향하에 사회역사적으로 형성한 민족의 고유한 심리적 기질, 감수 기능에 기초하여 민족사회 특유의 경향적인 사고와 행동방식, 정서적 체험방식 등을 체질적으로 받아들이게 되는데 바로 이것이 민족의 혈연적 공통성인 것이다.”라고 지적했습니다. (최기한 “민족통일의 정치학”, 1993.10.11 민중서고, 30페이지)
과거 식민지 시기에 일제가 우리 민족의 말살을 추구했는데 그 가운데서 가장 대표적이었던것이 우리 말, 우리 글, 우리의 성과 이름을 빼앗아간 것이었다는 사실은 참으로 아이러니칼하게도 핏줄과 언어의 공통성이 민족의 핵심적 징표라는 것을 역설적으로 증명했습니다.
이처럼 출발부터가 주체적인 민족의 논리는 우선 민족이 있고서야 계급도 있다고 주장합니다.
민족과 계급은 인간의 사회적 집단이라는 의미에서는 공통성을 갖습니다. 그러나 우선 포괄범위에 있어서 민족은 자체내에 여러 계급, 계층을 다 망라하는 가장 포괄적인 인간집단이며, 계급이나 계층은 어디까지나 민족의 한 구성부분입니다. 또한 공고성에 있어서도 계급이나 계층은 사회제도의 변화에 따라 소멸되기도 하고 발생하기도 하지만 민족은 사회제도의 존폐에 관계 없이 존재하는 가장 공고한 사회적 집단입니다.
바로 여기서부터 민족이 있고서야 계급도 있고 민족의 이익이 보장되어야 계급, 계층의 이익도 보장될 수 있다는 결론이 도출되게 됩니다.
그래서 김일성 주석님께서는 이남의 전 외무부장관 최덕신 선생을 만나셨을 때 “나는 일제를 반대하여 무장투쟁을 벌였을 때도 그러했지만 언제나 민족문제를 생각해 왔다. 자기 민족이 없이 공산주의를 해서 뭘 하겠는가”고 말씀하셨으며(최덕신 “민족과 나”, 통일평론사 1984.8.20, 256페이지), 문익환 목사님을 만나셨을 때도 “사회주의도 민족을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도 민족을 위한 것이라야 한다고 저는 종교인들에게 말합니다.”, “저는 동지들에게 사회주의자가 아니라 민족주의자라는 평을 들어 왔습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문익환전집” 5권, 사계절 출판사, 1999.1.18, 169∼190페이지)
민족이 있고서야 계급도 있다는 것은 우리 민족이 겪은 역사적 경험, 특히 우리 나라가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되었을 때만 보아도 잘 알 수 있습니다. 당시 우리 민족 안에는 크게는 지배하는 자와 지배를 받는 자로 나뉘어져 있었으며, 민족 내부에는 가진 사람과 못가진 사람, 종교를 믿는 사람도 안믿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남다른 기술이나 지식을 가진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라를 잃고 민족의 자주권을 상실하게 되자 그들에게는 똑 같이 망국노의 처지가 차례졌으며, 지위나 재산은 물론 생존권까지 빼앗기거나 위협받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민족이 있고서야 계급도 있으며 민족이 없으면 어느 계급도 자기 존재를 위협받게 되는데, 여기서부터 모든 계급, 계층 또는 사상과 이념, 종교 신앙을 달리 하는 사람들도 민족의 운명, 민족의 이익 앞에서는 그같은 차이점이나 개별적 이해관계를 뒤로 미루고 민족의 이익을 우선시켜야 한다는 결론이 도출되게 됩니다. 이것이 민족의 논리 가운데서 또 하나의 내용을 이룹니다.
이 민족의 논리는 요즘 민족 중시, 민족 우선이라고 불리우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는 결코 요즘에 와서 출현한 것이 아니라 보시다싶이 우리 민족의 역사적 경험에 기초해서 오래전에 나온 것입니다. 이는 특히 분단 60여년의 교훈을 잘 반영하고 있습니다.
해방후 외세에 의해서 국토와 민족이 분열의 위기에 처했을 때 그 위기를